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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서 한 해를 접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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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4-12-21 ㅣ No.76833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서울에 달동네라 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습니다.

소위 베이비붐이라는 세대에 태어났던 저는 당시 초등학교시절 한반에 인원이 보통 80명 정도였지요.

또 그것 조차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 인원이 160명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물론, 서울에만 있었던 풍경입니다.

당시 저와 같은 시대에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분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당시 같은 반 친구네 집을 놀러가면 대개가 소위 말하는 달동네 내지는 판자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달동네라 해서 특별히 창피할 것도 없었고, 그다지 특별날 것도 없었던 것이 당연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육성회비가 사립을 제외하면 잘 사는 친구들은 600원, 그다음 잘 산다하는 친구들은 450원, 그다음 300원, 그다음이 150원이었고, 가장 하층민이라는 가난한 친구들은 무상이었습니다.

물론, 무상으로 다닐려면 동사무소 같은데서 무슨 확인서를 떼서 학교에 제출 했어야 했지요.

나머지는 학부모와 선생님과의 실랑이가 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가령, 선생님 판단에 이 학생은 600원을 내야 한다고 판단해서 정하면 학부모님들이 와서 죽는 소리해가며 물건 값 깍듯이 사정해서 450원으로 정하기도 했었지요.

저는 초등학교시절 육성회비를 450원을 내고 다녔으니 달동네에서 사는 부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했던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10중 8,9는 판자촌 내지는 달동네 였습니다.

수도도 없어서 펌프라는 것이 마당가에 있었고 그 펌프를 이용해서 물도 마시고 여름에 친구들과 공차기를 하고 땀에 젖으면 마당에 웃도리를 벗어 제끼고 엎드려 서로가 등목도 해주며 장난도 치고 했던 제 어린날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가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고 내 자식만큼은 잘살게 하리라 하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아오신 덕으로 이제 우리나라도 OECD회원국이니, 뭐니 해가며 오히려 가난한 나라들을 돕는 국가로 바뀌었으니 참 감회가 새롭긴 합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 서울 하늘에 달동네라 하는 것이 어느덧 제 기억속에서 빛바랜 흑백사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가끔 철거문제로 마찰이 불거져 뉴스에서 보긴하지만 제 배가 부르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지나가기가 일쑤였지요.

그러나 아! 아직도 서울하늘엔 달동네가 있었습니다.

어저께 이곳 게시판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망년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마을버스조차도 헥헥거리며 언덕길을 오르고 오르자 어렸을때 보아왔던 그 달동네 비슷한 곳에 당도했습니다.

수사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준다 했을땐 무슨 수도회 같은데서 하는줄 알고 미처 선물도 준비 못하고 갔건만 그곳은 바로 수사님께서 사시는 집이었습니다.

장소도 비좁아 여러명이 앉아 있기 불편하기도 했습니다만 저에겐 오히려 더 정겨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에게는 정겨움이라는 소리는 사치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죄스런 마음을 갖고 정겹다고 표현하겠습니다.

2004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교회적으로는 대림시기를 맞아 곧 다가올 가난한 아기예수의 구유와도 비슷한 그런 환경에서 조촐한 음식앞에 앉아 서로가 정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올 한해를 접어가는 시기에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선물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잔, 두잔...취기가 올라 미처 하지 못했던 말도 많았고, 또 미처 해서는 안될 말도 했는지는 모릅니다만 가끔씩 담배 한모금 빨고자 밖에 나와 그 달동네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화려함이 왠지 낯설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아직 세상에는 우리가 둘러봐야 할 곳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2004년 저물어가는 시기에 주님께서 제게 보여주시고자 하셨나 봅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수사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전 제가 살아온 과정을 둘러보니 Luxury하고는 확실히 거리가 먼듯 합니다.

그렇게 살고자 발버둥은 치고 있으나 아무래도 제 체질은 그쪽하고는 거리가 먼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부자되기는 글렀나 봅니다. *^^*

자꾸 달동네쪽에 정겨움을 갖고 있으니 뭐가 잘못되도 확실히 잘못된 모양입니다.

이제 곧 다가올 성탄에는 그곳에 사시는 모든 분들께서 마음만은 큰 부자가 되시기를 산타 할아버지께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강짜를 놔서라도 주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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