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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37, 聖女 이소사(아가타,1783~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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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77407

聖女 이 소사(아가타)는 경기도 이천 구월에서 외교인 부모에게 태어났으며, 1838년 순교한 聖 이호영

 

(베드로)의 누님으로. 그녀는 17세의 나이로 외교인에게 출가하여 3년을 살다가 남편과 사별했는데,

 

현석문 (가롤로)의 기해일기(己亥日記;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근거로 훗날 이 기록은 103위

 

성인 탄생의 중요한 자료가 됨)는 이 아가타의 생활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얼마 안 되는 가산마저 소진되고 어머니의 종교 무지로 딸을 외 교인에게 출가 시키는데 결국 3년만에

 

사별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시동생과 함께 근근이 살아갑니다. 그녀는 고난 중에도

 

늘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조금도 근심하는 빛을 찾을 수가 없을 뿐더러 더욱 겸손하고 정중한

 

사람 됨됨이의 행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그녀를 존경과 사랑으로 기리도록 합니다. 이토록

 

그녀의 착하고 아름다운 언행들을 모두 기록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이렇게 두 남매는

 

지독한 가난을 참으며 삯바느질로 살림을 겨우 연명하면서도 열심으로 수계 생활을 지켜 나갑니다.

 

이 아가타는 을미년(1835) 정월, 그의 집 한강변 ‘무쇠막’이라는 곳에서 그의 동생 이호영(베드로)과

 

포졸들의 기습적인 습격으로 피신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포졸에게 잡힙니다.

 

포청으로 압송된 그들은 포장이 묻는 말에... “너희들이 천주학을 한다는 말이 옳느냐?”

 

“ 맞습니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조물주 천주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도리 입니다!!.” ....

 

"무부무군(無父無君)하는 천주라는 사특한 종교가 어찌 生,死를 주관한다는 말이야!!"

 

너희들과 함께 천주학을 믿는 일당들이 있는 곳을 대라.”

 

“천주는 우리의 대군 대부이시니 절대로  배교를 못하겠으며 또한 같은 교인을 대면

 

말로써 남을 살해함이 됨으로 말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당당한 모습에 화가난 포장은 형리를 시켜 더욱 가혹하게 주리를 틀고 매질을 가하도록 합니다.

 

모진 고문에 동생(이호영 베드로)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누이가 격려합니다.

 

호영 베드로야!! 천주 천사가 금자를 가지고 천국의 길을 세고..재고 있구나,  용기를 내어 기도 하여라!!

 

동생을 격려하는 말에 형리는 더욱 분노가 폭발하여  이 아가타를 모욕하며 매질을 가합니다.

 

“고약한 계집 같으니!  동생을 참회시키기는 커녕 격려를 하다니!”

 

이 아가타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 하얗게 드러난 뼈를 타고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의 결심은 조금도 꺽이지 않습니다. 의식을 회복한 동생 베드로가 이제는 누님을 위로하며

 

 “누님, 왜 그런 말을 해서 그런 모욕을 당하십니까?”......

 

형리들은 두 남매의 옷을 벗긴 후 팔을 잡아 매달고  길이가 무려 8척이나 되는 붉은 몽둥이로 무수히

 

난타하기 시작합니다.  이 아가타의 온몸은 유혈이 낭자 했으나,  그의 용기는 조금도 꺾이지 않습니다. 

 

이 베드로가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는(1835년 11월 20일字) 자기와 누이가 받은 문초와 고문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이 편지 내용은 관리 부족으로 대부분 소실 되었지만,

 

다행이 일부는 모방 신부가 파리 외방 전교회 본부에 보낸 편지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 편지에 의하면... "남매는 1835년 음력 11월 6일 법정으로 끌려가서 문초를 받았다.

 

이호영 베드로는 누이에 대해..누님도 혹독한 문초를 받았는데 나와 같이 천주님 진리를 증거 했습니다.

 

이에 재판관은 우리들을 몹시 매질하라고 명령하자 형리들이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매질을 가 하는데

 

모진 매를 못견뎌 그녀가 끝내 실신을 하자 그제서야 형장은 매질을  멈추게 합니다. 하지만 매질은

 

멈추 었으나, 누님은 기운이 탈진하고 무거운 목 칼 밑에 몸이 움츠려 들면서도 오직 순교하기 만을

 

간절히 원하고 천주께 순교할 은혜를 주실 것과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당시 허태복이란 교우는 새우젓 장사꾼으로 감옥을 자주 드나 들면서 감옥안 교우들의 동향을 외부에

 

잘 전달 해주고, 특히 두 남매의 심부름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분의 증인에 의하면...

 

 " 남매는 수많은 혹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고 언제나 태연한 기색으로

 

조금도 낙담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의 옥중 생활 중  아가타의 착한 표양에 감동하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심지어 옥졸들까지도 과연 천주교는 아름다운 도리라고 칭송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가타가 4년이란 긴 세월을 옥중에서  겪은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 스러웠다.".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을 향해 수레에 올랐을 때도 이 아가타의 안색은 여전히 평온했고,

 

형장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리자 성호를 긋고 나서 침착한 자세로 칼을 받고 위주 치명하니.....

 

聖女의 나이 56세 였습니다......끝.

 

다음은 聖人 이호영(베드로,1802~1839)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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