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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봄기운.... 어쩌고 하며 며칠 전 글을 올렸던 걸 기억하세요?
그 후기를 쓸까싶어서 필(筆)을, 아니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라고 해야하나요.
전 주말이 오면 으례 배낭을 챙겨서 산으로 가는 게 일상이거든요. 십 여년이 되었을겝니다. 산은 대개 삼각산이지요. 더러 주말에 결혼식이 있거나 피치 못할 약속이 있을 때는 청계산이거나 우면산으로 방향을 바꾸지요.
아참~ 여름, 이글이글 태양이 내려쬐는 여름에는 삼각산은 사절하고 우면산을 갑니다.
왜냐구요? 햇볕에 얼굴이 타면 곤란하잖아요. 미용에도 신경 써야지요.
그렀다면 우면산에는 햇볕이 들지 않나요?
그럼요, 울창한 숲이 우거져 거의 햇볕에 노출시키지 않고도 산행을 할 수 있거든요. 또 북향이어서 차단제라고 하나요. 햇볕차단 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깊은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이 난답니다. 남부순환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산, 시내 중심부에 그런 숲이 하시겠지만. 이것도 잘 사는 서초구에 복도 되게 많네 하시면 곤란하지요. 그래서 집값이 비싼가. 에이~ 불평만 하실 거 아니라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날역으로 오시면 되잖아요. 혹시 굿자만사님들이 에이~ 가보니까 별 꺼 아니던데. 하시면 듣는사람한테 웃음꺼리밖에 안되지요. 절 따라 와보시면 이렇게 무궁무진한 세상이 있는 줄 하고 감탄하실걸요. 산 싸나이 제 말을 들으셔야지요.
어찌 이야기가 빗나가는 조짐이 보이네요. 다시 삼각산으로 돌아갑시다.
이 번 주말도 지난 번에 올린대로 국민대학 정문 옆에서 시작하여 형제봉 능선으로 대성문을 바라보며 험한 산행을 시작했지요. 집을 나설 때는 따사로운 봄볕에 얼굴 그을까 썬크림을 바르고 주저하다가 겨울산행 때 입던대로 바람막이 고어택스 파카도 챙겨넣었습니다.
산을 오르자 아직 개나리는 커녕 온통 적막만 감도는 겨울산에 온 듯 바람소리만 윙윙 울부짖던 걸요. 아무래도 제가 올린 글과는 너무 시차가 나는 것같아서 낭패감에 다리가 풀리던걸요. 아무리 둘러보아도 생강나무의 노랑 꽃은 커녕 산수유와 민들래는 씨가 마른 듯 했습니다. 바싹 마른 흙은 부풀어오르기는 커녕 씨 한톨도 뿌리면 뱉어낼 듯 냉냉했습니다. 갈색 숲은 아직 깊은 잠에 취한 밤이었습니다.
혹시 제글을 읽고서 봄맞이 산행을 하신 분이 계신다면 큰일 나겠다 싶어 여간 초초한 게 아니었습니다.
산을 오를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몸은 으슬으슬 추워오데요. 제 맘을 모르는 듯 바람은 몹시도 으르렁거렸어요. 귀막이 캡을 스지 않았을뿐 모든 것이 겨울이었습니다. 더우기 푸른 소나무 아래 쉬기라도 할 양이면 힘겹게 올라오느라 흘린 땀 때문에 더욱 추웠습니다.
왜이리 대성문이 멀던지 까마득하게 가물거리는 대성문루가 사라졌다가 들어나고....어서 와하고 손짓하는 걸 본 것은 거의 일선사 초입까지 왔을 때 내 눈 안에 들어왔어요.
참~ 지난 번 글에 대성문 마당을 내려다보며 시루떡을 베어물었다한 것은 제 오타입니다. 대성문에는 마당이라고는 한뼘도 없어요. 대성문을 지나 능선길로 보국문을 거쳐서 대동문에 와서야 너른 마당을 볼 수 있답니다.
저는 삼각산, 하고도 많은 문 가운데 보국문이거나 백운대 바로 밑에 있는 위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쉬기는 커녕 쏜살같이 지나갈뿐이지요. 양반이라면 의관을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감요. 문루도 없이 맨상투바람으로 앉아 있는 모양이 별로예요. 대성문이라든지 대동문 대남문같이 떡하니 기와로 지붕을 이고 양반다리를 하고 있어야잖겠어요. 양반이라면 기름이 반지르한 통영갓을 쓰고서 긴 장죽을 물고 에~헴 하고 헛기침이라도 하며 말이지요. 통영갓은 어디가고 맨상투바람으로 촐싹거리고 앉아 있는 품이 어찌 호감이 갈까요. 제가 물때가 간 고리타분한 양반 찌꺼기라고 타박하시면 어쩌나요.
언제 봄비가 나렸던가 할 정도로 온통 산은 메마른 삭풍만 불더이다.
진달래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우이동 계곡을 아스라이 내려다보는 바위에 좌정하고서 백설기를 베어물면서 생각을 정리할까요.
아무래도 지난 번에 올린 글은 작년에 끌쩍였던 게 몸통이라면 지난 주에 올라와서 느낀 것을 얼기설기 덧붙여 올린 탓이라 어쩨 구멍이 숭숭 뚫린 글이 되었나봐요. 작년에는 이맘 때보다 몇 주 뒤였을게요. 부활을 넘긴 사월 중순께였을게요. 그날은 종일토록 비가 나리는가 하면 안개가 자욱했던 날이었어요. 그래서 인적도 드문 산행길에서 홀로 흠뻑 봄에 취해서 개발네발 끄적였답니다. 봄산행 소감을.
오늘따라 바람이 숭하게 불어쌌는 날에는 봄기운은 커녕 겨울이 다시 오나하고 움추려들기 바쁘네요. 더러 산 계곡에는 희끗 눈무더기가 숨어 있고 개울물 졸졸 흘러가는 소리가 윙윙 불어쌌는 심술궂은 바람소리에 묻혀버립니다. 이렇게 봄이 오고도 바람이 왠 기승을 부릴까 하고 골똘이 생각해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개마고원을 넘고 이곳 삼각산까지 불어왔던 겨울의 여왕 높하늬바람이라는 북서풍이 삼각산, 많고도 많은 계곡에서 시린몸을 풀었던 게 지난 겨울초입이었겠지요. 새끼 바람이 아직 삭정이 타는 불도 끄지 못할만큼 어렸던지라 엄마가 잠시 한강변까지 다녀오느라 계곡을 비운사이 얼핏 마실을 나섰답니다.
후후 이제부터 동화나라로 빠져볼까요.
삼각산 백련사 보살님이 시주님 점심 차려드릴려고 눈에 젖은 청솔가지를 꺽어 아궁이에 밀어넣고 후~후~ 하고 날숨을 불어가며 불을 부치는데 눈이 아리도록 매운 연기만 꾸역꾸역 밀려나옵니다. 눈을 부벼가며 용을 쓴 탓인가 겨우겨우 불을 붙였겠지요. 잠시 후 푸른 연기도 가시고 이글거리며 불이 제대로 붙자 무쇠솥을 열어 쌀을 앉힌 밥솥에 고구마 두어 알 넣고서 살강에 얹힌 보시개를 꺼내 부엌을 나갑니다. 보살님이 김치독에 시원한 동치미를 꺼내러 갔다고 이야기를 풀어갈까요.
그 모습을 몰래 훔쳐보던 아기바람이 아궁에 넘쳐 일렁이던 불이 왠지 따스해 보여 들어왔답니다. 보살님 흉내내려고 아궁이에 볼록하니 부풀어오른 볼때기가 온통 빨갛게 물들 정도로 후~우 후~우 용을 써봅니다. 어찌된 셈인지 불길은 요동도 안 하네요. 약이 바짝 오른 아기바람이 얼굴이 부풀어오를대로 부픈 도깨비마냥 기를 쓰며 불어대니까 겨우 배고픈 늑대 혓바닥처럼 붉은 불길이 잠시 일렁이다가 다시 맹령하게 타오르고 마는거예요. 뭐 어찌된 셈인지 영문을 모르는 아기바람은 그새 지쳐서 아궁이 앞에서 얼풋이 잠이 들었버렸네요. 아궁이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이 친절하게도 솜이불을 꺼내서 아기바람의 어깨를 덮어주었다지요.
여기서 문제가 벌어진 게지요.
보살님이 김치 주발을 들고서 막 눈이 내리기 시작한 뒤뜰에 널린 빨래를 걷으러 갔다가 왔으면 좀 좋았겠어요. 금새 돌아와서는 김치보시개를 든체로 아궁이 앞에서 곤하게 잠든 아기바람을 발견하고는 냅다 발길질을 하며 쫓아버렸답니다. 이런 인정머리하고는....쯪쯪. 따뜻하게 몸을 덥히던 아기바람은 잠결인지 꿈결인지 쫓겨나와 눈이 내리는 계곡 코끼리바위 품에 와서 못다한 잠을 청해버렸지 아마.
참, 그날은 눈 한번 푸짐하게 내렸대요. 수유리에서는 온통 사중오중 추돌사고를 빚은 자동차 땜에 밤이 이슥하도록 교통지옥이 벌어졌답니다.
삼각산 계곡마다 내린 눈이 푸짐하게 덮여 세상이 온통 막 쩌낸 백설기 나라가 된게야. 그제야 한강을 세차게 젓히며 미친년 쏘댕기 듯 설치던 엄마바람이 시장기를 느껴 삼각산 계곡으로 돌아왔대요. 그때서야 아기 생각이 나서 찾아 다녔지만 어떡해요. 아기바람을 덮어준 폭신한 눈 이불이 켜켜이 쌓여서 엄마는 밤새도록 돌아싸댕겼지만 아기를 찾을 수 없었답니다. 밤이 새도록 아기를 부르며 돌아다니느라 정능에서 수유리 아니 평창동 주민들까지 잠을 들지 못했대요. 길게 꼬리를 물고 몸서리치게 울던 겨울바람소리가 어찌 애간장을 긇어놓던지.
지난 12월, 성탄을 앞두고 올랐던 대남문에서 청수암문으로 빠지는 길목에 그리도 빡세게 울어쌌던 바람때문에 귀가 시리다 못해 칼로 베는 듯하더니 바로 엄마바람이 아기를 찾느라고 미친 듯 돌아다닌 탓인 걸 이제사 알겠더라고요. '미친년 널 뛰듯이' 라는 말 아시는지? 바로 이꼴을 두고 한 말이랍니다.
연화봉인가 하더니 사모바위로 해서 백운봉까지, 대동문에서 진달래 능선길에서 언뜻 봤나하더니 어느새 탕춘대성 아래 곁에 이북오도청 국기게양대에서 태극기를 찢어버릴 듯 분탕질을 하고선 분을 참지 못해 길옆에서 오댕에다 떡뽁기 안주 삼아 막걸리 잔술로 파는 비니루 선술집을 통채로 엎어버리더이다. 지금 말하지만 그때, 엎질러진 오댕국물에 금방 뜯은 새 담배곽을 버렸지 뭐예요. 참 심술궂게 분탕질을 벌리는 바람을 두고 욕을 할 수는 없어요. 지 자식 잃은 어미가 미친짓 한다고 누가 욕을 하겠어요.
지난 겨울이 그리도 맵싸게 추웠던 것은 아기를 잃은 바람 탓이란 제 의견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겠지요.
어쩝니까. 천년을 두고 울어쌀 것같이 기승을 벌이던 바람도 남녘에서 썰물처럼 밀려오는 봄기운을 어쩌겠습니가. 새마바람(동남풍)이 곱게 밀려오던 경칩 언저리에서 울며 돌아보며 차마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어쩌지 못해하며 멀고먼 시베리아로 돌아가야지 별 수 있나요.
그런데 문제는 겨우내 내리던 눈이 지 어미가 분탕질 치는라 녹을새가 없이 꽁꽁 얼어붙고 그 위로 또 눈이 쌓이고 겨우내 켜켜히 쌓인 얼음이....이제사 봄이 오니까 별 수 있나요. 산천에 눈 녹는 어느 봄날, 잘 잤다고 기지개를 켜고 아기바람이 눈을 떴대요. 어쩌나, 눈에 설은 계곡이 아기바람을 무섭게 했지요. 그제야 엄마가 생각이 나서 엄마 찾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답니다. 어디 시베리아, 친정으로 돌아간 엄마를 어디가서 찾을 수 있나요. 아기는 밤새도록 울어쟀기며 엄마를 찾아도 엄마는 간 곳이 없네요.
보다못한 늙으수래한 상수리나무가 일러주었다지요. 니 엄마는 고향에 돌아갔단다. 아기는 고향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상수리나무를 쳐다보았겠지요. 상수리나무는 고향이란.....하고 알아듣게 일러 주었대요. 그런대 이런 낭패가 있나요. 아기가 돌아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흘러 '높하늬바람'이라고 북서풍이 끝난 봄에 멀고도 먼 시베리아가 어디 산 너머 이웃이랍니까. 방법은....있기야 있지만 하고 말꼬리를 흐리는 상수리나무를 조르고 졸라 알아냈어요 아기바람이. 참 아기라고 하기에는 그새 숙성한 바람은 총각태가 난다고 제법 삐죽삐죽 수염이 나오더라고요. 사실 총각녀석이 분탕질을 칠 때면 아득해요. 이제 새순을 내보내고 봄을 마지해야할 상수리며 갈참나무랑 산수유까지 매섭게 찔러대는 그녀석의 송곳같은 수염땜에 갈기갈기 찢긴 등걸이며 새순까지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답니다.
그예 나무들이 회의를 했지요.
분탕질만 치는 총각바람을 쫓아버릴려고 상수리나무가 일러주었대요. 황사가 덮치고 한 며칠 뜸을 들일 때면 높이높이 하늘을 타고오르면 동남 쪽에서 불어오는 '된마바람'을 타고 설악산 쯔음 갔다가 쉬어서 어느날 바다가 동천을 하는 밤에 다시 높이 날아 금강산으로, 또 두만강에서 송화강 어름을 타고 흑룡강 물길을 타고 어째어째 가노라면 네 엄마한테 갈 수 있다고 말도 되는지 안 되는지 일러주었대요. 빨리 쫓아버릴려고 대충 입에서 나오는대로 가르쳐 주었겠지요.
그때부터 삼각산은 또 요동을 치기 시작했어요. 틈만 나면 4.19 위령탑에서 날을 곤두세운 바람은 단숨에 용암문까지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백운봉 꼭대기에서 모잽이로 승가사 앞마당까지 처박히는 게 아니겠어요. 왠 난리냐고요? 날개에 힘을 올리려고 연습한답니다. 상수리나무가 이랬대요. 고향이 그렇게 멀어요 하는 총각바람에게 그럼, 멀고먼 곳이란다. 그곳은 세상 끝인 데 네가 힘차게 날고 날아도 보름달이 이즈러졌다가 다시 꽉 차게 부풀어 올라야 넌 네 엄마가 있는 외가에 갈 수 있단다. 외가라니요? 음~ '외가'란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좋은 곳이란다. 상수리도 노회하기 짝이 없군요. 바람을 쫓을 심산으로 시베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포근하고 좋은 곳이라고 바람을 잡다니......
그때부터 엄마를 만나고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외가에 간다는 바람의 간절한 소망때문에 삼각산은 몸서리치는 몸살을 앓게 됩니다. 실 없는 상수리나무 때문에.
백련사 앞 마당에서 뜨건운 커피를 훌쩍이며 나는 깨닳았지요.
보리수 아래서 득도하신 부처님 처럼 인생의 크나큰 이치를. 봄비가 은밀하게 내리는 어느날엔가 미친 듯이 쏘댕기던 바람을 널디넓은 가슴으로 봄비가 보듬어 안겠지요. 이제, 내가 널 엄마한테 데려갈께 하며 속삭이는 봄비가 허망하게 윙윙 울부짓던 바람을 재우겠지요. 깊디깊은 잠에 빠져들게 토닥토닥 바람을 잠재우던 엄마의 따사롭던 손길로 말입니다.
거칠디 거친 바람의 숨 소리는 이제야 평온한 봄바다, 은비늘 반짝이며 먼 고향을 꿈꾸던 한마리 예쁜 고래를 달래던 바다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베개삼아 잔잔해져 갈거예요. 옹알이를 하는 바람은 덩치만 컸지 아직 엄마젖을 찾는 아기, 이리와보세요. 젖내음이 달큰한 덩치만 큰 아기를.
봄은 이렇게 꽃을 피우기에는 맵디매운 바람을 견디어내야하고 황사가 자욱한 날에는 승천을 하려고 용트림을 치는 겨울바람을 토닥여야하는 모진 계절의 손바꿈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한답니다.
그럼 그 총각녀석은 어찌 됬을가 하고 묻는 분이 계신다면 이렇게 대답하지요. 엄마한테 데려갈께 하고 달래던 봄비가 어찌 노회한 상수리를 닮아 거짓뿌렁을 할 수 있겠어요. 엄마한테 데려갔지요 암요.
아직 잘 모르겠다구요?
그럼, 마저 이야기를 해드려야겠군요.
봄비가 속삭이듯 내리던 어느 봄날에 봄비가 숫기 많은 총각녀석을 토닥이며 잠들게 했지요. 그리고 부풀어오르던 흙이 그 녀석의 간절한 소망을 보듬어 안으며 봄비에 넘쳐흐르던 개울따라 강으로 흘러가겠지요. 강은 흘러흘러 바다로 나아가고 엄마를 만난다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녀석을 이쁜 고래가 동무하며 힘차게 헤엄쳐 갔답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언젠가 와본듯도한 아늑한 엄마의 품처럼 그곳으로 바람은 씩씩하게 헤엄쳐가고 있을거예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 옹아리를 하며....
그대여! 우리가 가슴에 담은 그리움이 어떤 것일지라도 간절하다면 꼭 이루어 주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지요. 성모님이 오셔서 내 손을 잡아서 끌어주실껄요. 아님 하다못해 이쁜 고래 한마리 보내서라도 동무해서 데려가시는 주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대는 바보예요 바보.
주님~주님 하며 예수님 얼굴만 쳐다보지 마세요.
봄비의 얼굴을 하고 오실른지, 한 마리 예쁜 고래의 모습을 하고 오실른지 주님은 꼬~옥 그대의 간절한 소망을 모른다하시지 않을거예요 암요.
처연하게 비가 내리고 맵싸게 바람이 울부짖는다 해도 한 번 온 봄이 어찌 봄이 아니고 겨울이랍니까.
우리에게 사순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당신 자신을 통채로 벌거벗은 몸채로 내준 "그분"의 희생과 사랑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대는 바보예요 바보.
오늘따라 푸른 솔가지에 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옛날 외가 앞녘에 야트막하게 엎드려 있던 말갈기처럼 생긴 앞산 솔숲을 흔들며 불어가던 그 바람을 닮았네요 몹시도.
파르르 하늘로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물끄러미 보다가 백련사 앞마당 가녀린 대를 내민 복숭아나무가지에 새순이 울퉁불퉁 올라오는 걸 발견하고 신기해 했습니다. 봄이 온거지요 봄이...
"봄바람에 춤추는 꽃잎처럼 내마음도 흩날리네."
오늘 신문에 올라온 글입니다. 아직 눈 덮인 계곡 산늘에 혹시 복수초라도 올라왔나 뒤져보았지만 노오란 복수초는 구경도 못하고 바람꽃만 보았습니다. 누구 색시가 이런 말을 하대요. 바람피우다가는 홀애비바람꽃이 되는 수가 있어. 으시시한 협박을 하고서는 이내 "~ 아~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건 무슨 심뽀랍니까. 아무튼 봄바람이 불 때면 지 색시 챙겨야겠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고서
" 야 임마~ 삼각산 계곡에서 흘러간 물이 한강을 타고 흘러서 황해로 갈 것 아냐. 황해에서 어찌 고래를 만날까. 거기에다 고래랑 어찌 시베리아까지 헤엄쳐 갈수 있다냐" 하고 항의하실 분이 있을 것같아 미리 변명해둘랍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송창식 노래에도 고래는, 예쁜 고래는 동해바다에 살지 황해 탁한 물에는 살지 못하지요. 그럼?
참, 제가 무슨 프로입니까. 소설가도 아닌 백두서생이 대충 생각나는 대로 엮어본 이야기를 가지고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사실에 어긋나고 플롯이 어쩌고 하면 우짭니까. 그냥 삼각산에서 모질게 부는 봄바람이란 놈이 엄마찾아 삼만리라고 예쁜 고래를 만나 동무하고서 헤엄치는 모습이, 엄마를 찾는 모냥이 이쁘지 않으세요.
또 우리 스스로도 가슴에 예쁜 고래 한 마릴 키우시지 않으셨던가요. 아님, 이 팍팍한 세상 어찌 살아왔던가요.
그대와 나, 이쁜 고래가 은빛 물결을 부시며 힘차게 헤엄치는 저마다의 바다를 담지 않으셨던가요. 우리가 품은 크고도 큰 바다 안에서 서로가 사랑을 하고 잡히지 않는 바람을, 소망을 간절하게 그 어떤 분께 빌어보지 않으셨던가요.
제 글을 읽고서 봄 산행을 망쳤다고 원망하시는 분을 위해서 제가 써비스를 하지요. 무슨 써비스? 그럼 벌주(罰酎)를... 너무 나가지 마시고.
제 때문에 망친 산행,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원망하시는 분에게 삼각산, 탈도 많은 산행에 동행해드리지요.
뭔 동행!
이러지 마세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최성수의 '동행'이랍니다. 한평생을 마치 두 사람의 순례자처럼, 때로는 둘 중에 한사람이 '피곤하면 기대' 라고 말하면, 다른 한사람이 '네가 곁에 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혹시, 철 없이 형제님이 눈치 없이 청하지는 않겠지요.
삼각산, 울울창창한 숲이 끝없이 펼쳐진 계곡을 내려다보며 높다란 갈참나무 둥지에 앉아 노래하는 산새하며 노란 산수유가지에 이는 바람이 가져다주는 소리뿐 아니라 바람이 풍기는 냄새와 살갑게 어루며 말 건네는 정담까지 맛보게 해드리지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세상,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아니 은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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