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95년 <대전가톨릭문우회> 문집 제2호 『당신 안에 하나』에 실린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쓴 때가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엊그제 올린 <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라는 글을 쓰던 중 문득 10년 전에 쓴 <선친께서 벌어주시는 돈>이라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 글을 찾아서 읽어보니 감개무량함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 소개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홈페이지 (http://jiyoha.netian.com) '가족' 난의 '선친 지동환님' 방에 올려져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만, 11년 전의 글을 오늘 '굿 뉴스' 자게에 올립니다.
저의 최근 글 <아내가 주인인 새 집의 '등기권리증'을 받고>를 읽으신 분들께는, 그 외에도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신앙 생활에 조금은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이 좀 길어서 세 번으로 나누어 소개하며, 제 구차한 '신앙 고백'을 너그럽게 관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친께서 벌어주시는 돈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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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걸 먹은 세월의 첩첩 산중에서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교무금에 관한 것이었다. 한 달 빚 처리 금액이 백수십만 원대로 올라섰을 때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생각인데, 그동안 내가 교무금을 너무 적게 내고 살았다는 자각이었다. 교무금을 너무 적게 내서 벌을 받았다는 식의 유치한 생각까지 마음에 담은 건 물론 아니었다.
하여간 나는 얼굴까지 화끈거릴 정도로 자각이 몹시 예리했다. 내가 하느님께 바치는 교무금의 액수와 매월의 빚 처리 금액을 비교해 보니 어처구니없고 하느님께 여간 죄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93년에는 45만원의 교무금을 바쳤고, 94년에는 50만원의 교무금을 바쳤다. 언걸 먹는 세월의 와중에서도 93년 말의 새해 교무금 신립 때 5만원을 올렸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교무금을 너무 적게 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교무금 납부에 열성을 기울인 편이긴 했다. 93년 봄 30만원의 돈이 생겼을 때, 장차 교무금도 쉬이 납부하지 못할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교무금부터 우선 완납을 했던 일도 있다.
그런데 94년으로 넘어와서 매월의 빚 처리 금액에 비해 (말하자면 우리 집의 수입에 비해서) 하느님께 바치는 교무금 액수가 너무 적다는 뼈저린 자각을 한 후, 아버님의 동화에 대한 희소식이 왔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신기하기도 하다는 느낌이 내 가슴에 어떤 충만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94년의 교무금 50만원을 거의 아버님께서 벌어주신 돈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94년 말에 95년도 교무금을 신립할 때 십만 원을 올려서 60만원을 신립했다. 가만히 따져보니 아버님이 최소한 그 정도는 벌어주실 것 같았다. '최소한'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님의 동화를 사용하겠다는 출판사들에서 올 예정된 금액을 뜻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사정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벌어주시는 돈만큼은 내 세속의 일에 쓰지 말고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굳건히 했다. 이것은 내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항이다.
나는 금년 1월 1일과 설날에 각각 십만 원씩의 교무금을 바쳤다. 그리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넣어보니 <우리교육>과 <웅진출판>으로부터 각 십만 원씩의 아버님 동화 사용료가 와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벌어주시는 돈으로 교무금을 내는 일은 이상하게 신선하고 즐거운 기분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머님이 기뻐하신다. 생전에, 더욱이 말년에는 두 번의 고료 외에는 전혀 돈을 벌지 못하셨던 당신의 남편이 사후에 벌어들이는 돈으로 교무금을 해결하는 것이 어머님은 정말로 기쁘고 큰 위안이 되시는 것 같다.
나는 최근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도 성당에 가서 십만 원의 교무금을 내었다. 월간 <협동조합> 연재 소설의 첫 고료에서 일부를 뗀 금액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예수부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성모승천대축일에 십만 원씩을 납부해서 금년 교무금을 다 해결할 계획인데, 이왕이면 특별한 날에 교무금을 바치는 것이 더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것도 최근에 깨달은 생각이다.
불필요한 얘기지만, 처녀 시절 열심한 개신교 신자로서 '십일조'가 몸에 배었었던 아내는 지금도 십일조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나도 전에는 십일조를 별로 의식에 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교무금을 너무 적게 내고 살았다는 어느 날의 뼈아픈 자각을 잊지 않고 잘 보존시킨 다음 지금의 언걸 먹은 세월의 첩첩 산중을 마침내 벗어나게 되면 적어도 한 달 빚 갚기 한 금액 정도는 하느님께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정성 들여 바친 것을 하느님께서는 몇 배로 갚아주신다', '바친 만큼 복을 받는다'는 식의 기복 신앙적인 생각이다. 교무금은 결코 이 세상에서의 복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다. 복을 많이 받기 위해 십일조를 한다거나 교무금을 많이 바치는 것은 세속의 욕심이 결부되는 그릇된 신앙 태도이다. 교무금을 바치는 것은 신자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니만큼, 양심의 한가지 실체로서 진정한 감사의 표시가 되어야 한다. 정녕코 양심과 감사의 표시로서 '하늘에 쌓는' 것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 또한 내가 최근에 적극적으로 갖게 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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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오늘의 수난 속에도 다행스럽고 감사로운 일이 있다. 한 달에 1백 수십만 원의 빚 감당을 하며 살고 있는 지금이나 빚이 없었던 시절이나 넉넉지 못하게, 쪼들리며 사는 것은 거의 마찬가지다. 빚이 없었던 시절에는 내가 별로 돈을 벌지 못하였는데, 언걸 먹은 세월의 첩첩 산중으로 접어들면서 나에게 고정 수입과 이런저런 고료 수입이 생겨나서, 엄청난 빚 감당을 하면서도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고 그럭저럭 세월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말미암아 나는 진정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내 삶에 있어서 하나의 큰 시련일 수밖에 없는 최근 몇 년 동안의 그 다사다난했던 생활과 곡절은 나에게 더욱 큰 문학에의 의욕과 열정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참으로 대단한 소설거리가 내 가슴에 안겨져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생각까지 하였겠는가.
한 달에 고작 1백 수십만 원의 빚 감당을 하면서 그야말로 채신머리없이 진중치 못하게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하여 정말 부끄러운 마음 크다. 시집 한 권, 소설 하나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까지 일거에 벌어들인 사람도 수두룩하다는 사실과 강남의 오렌지족 아이들의 한 달 용돈이 평균 2백만 원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정말 창피하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건 아니다. 본디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물질에 욕심을 내지 않고 '가난'이라는 말을 좋아하며 살아왔다. 정직하게 번 돈으로 정직하게 살아왔다. '백년 손님'이라는 사람에게 이름을 빌려 주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것도 욕심이 없고 마음이 물러터진 탓이었다.
또한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에게는 용서하는 마음도 있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계속되는 수난(최근에도 경찰서에 다녀왔고, 보증보험회사에서 차압이 들어올 상황)도 아랑곳없이, 어디로 숨었는지 종적을 감추고 면목 없다는 핑계로 전화 한번 하지 않는 그 사람을 오히려 측은히 여기는 마음도 있다.
만약에 내 소설이 거짓말같이 히트 작이 되고 베스트 셀러가 돼서 큰돈이 굴러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선 빚구럭에서 허덕거리는 또 한 명 누이동생네부터 살려내고, 집을 담보로 제공했다가 결국엔 집을 두 번 사는 고생을 치른 남동생의 손실도 벌충해 주고, 마지막엔 엄청난 실수로 인생 꼴이 말이 아니게 된 그 사람네도 어떻게 붙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그런 꿈이 내 가슴에 가득 차 있다.
오, 하느님, 저를 굽어 살피시고 저의 꿈을 어루만져 주소서. 그리고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말라'(마테오 6, 2)고 하신 주님 말씀의 뜻을 잘 헤아리면서도 애써 이렇게 나팔을 불고 있는 저의 소치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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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의 동화집『팥죽할머니와 늑대』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13편의 동화들을 모두 묶어 또 한 권의 동화집을 펴내게 되었다. 이 일을 맡은 출판사는 <청년사>이다. 원래 <도서출판·00>의 편집장이었던 분이 제의를 해와서 원고를 지난해 넘겨 주었는데, 그가 <청년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원고도 가지고 갔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인세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금년 5월 어린이 날 이전에 발간된다고 한다. 이번에도 책이 좀 팔려 준다면 나는 아버님이 벌어 주시는 돈으로 동생들을 챙기고자 하는 그 소망을 조금은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 크다.
<도서출판·00>는 『팥죽할머니와 늑대』의 인세를 계속 주지 않는 것이 미안해서인지, 또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요량이기 때문인지, 정식 인세 계약으로 또 한 권의 동화집을 펴내자는 제의를 뒤늦게 해왔다. 물론 원고가 <청년사>로 들어간 후였다. 나는 원고를 챙겨보마고 했는데, <00>에서는 그 뒤로 아직 아무 말이 없다. 조금은 섭섭한 심정이다.
그러나 욕심을 갖지 않기를 재삼 다짐하면서, 내 아버님의 임종 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임종하시기 하루 전이었다.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극심한 병고에서 풀려나신 듯이 아버님은 하루종일 편안하신 양으로 누워서 가족들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시고 웃으시고 했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무슨 음식을 어떠어떻게 만들어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건강하실 땐 노상 손수 저자를 보아다가 직접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잡수신 분이었다. 반갑고도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가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니, 아버님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음식을 먹을 거라고 내 말에 속아서 얼싸 좋다 부엌으로 나가는 저 할망구, 순진맞기가 세상 일등이다."
그러며 아버님은 웃으셨다. 말하자면 당신의 아내를 마지막으로 한번 놀려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님은 그날 낮에 잠시 편안한 잠을 주무시고 눈을 뜨시더니 웃음을 지으셨다. 왜 웃으시느냐고 딸이 여쭈니, 아버님은 기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셨다.
"예쁜 소녀들이 열 명도 넘게 꽃다발을 들고 와서 나를 빙 둘러싸고 서로 자기 꽃을 받으라고 이놈 저놈 꽃다발을 내미는 통에, 내가 어떤 것부터 받아야 할지, 곤란해서 웃는 거여."
나는 지금도 아버님의 동화 작품이나 시들을 읽다보면 불현듯 아버님의 그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평생 천진난만한 성품을 지니고 사신 나의 아버님은 천사와 같은 분이셨다. 남에게 해코지나 거짓말 한번 하지 않고, 하느님과 하늘 나라를 믿고 살면서, 자신의 동심이 함빡 깃들인 많은 동화와 시작품과 가난의 참 모습을 고스란히 남겨놓으신 분이다.
'가난'이라는 말은 빈곤이나 궁핍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 말은 욕심 없는 마음, 조촐함과 겸손을 뜻하기도 한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욕심 없는 가난한 마음을 지녔기에 나의 아버님이 그렇게 순진무구한 동화들을 많이 쓰셨는지도 모른다.
아버님은 운명하시기 전 날 내 손을 꼭 쥐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동화들 중에서 괜찮은 것들이 있거들랑 몇 개 추려서 간직했다가 네 자식들한테 보여 줘."
아버님의 그런 소박한 당부 말씀에 나는 꼭 그러겠노라는 약속을 드렸던 것이다.
나는 내 아버님이 이승에서의 착한 삶과 믿음의 보람으로 하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수 있음을 또한 믿으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
<끝>
(1995년 <대전가톨릭문우회>문집 제2호 『당신 안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