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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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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수 [sooyaka] 쪽지 캡슐

2006-07-29 ㅣ No.102688

연중 제17주일   2006년 7월 30일 


요한 6, 1-15.  2열왕 4, 42-44.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수 근방 어느 산등성이에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남은 것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미 기록된 세 개의 복음서들 안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 중 중요하다고 생각한 주제들을 선택하여 명상하는 식으로 엮어 기록하였습니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기적 이야기들은 그것이 사실인 지를 묻기 전에, 그 이야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서들은 정확한 사실만 기록한 현대식 전기가 아닙니다. 초기 교회 신앙인들이 믿고 있던 바를 그 시대 독자들이 알아듣고, 같은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는 초기 교회가 이미 거행하고 있던 성찬을 상기하게 하는 표현들이 여럿 있습니다.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는 말로써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하신 파스카, 곧 해방절 식사를 상기시킵니다. 그 식탁에서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을 당신의 몸,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파스카를 언급하는 것은 오천 명을 먹인 오늘의 이야기를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분리하여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나누어 주셨다.’는 오늘 복음의 말은 최후만찬 식탁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요약하는 표현입니다. 초기 교회는 성찬에서 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복음서는 오천 명을 먹인 오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교회가 거행하던 성찬을 염두에 두도록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로 열왕기 하권의 엘리사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 고사(故事)를 바탕으로 발생하였습니다. 복음서 저자들이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에 그것을 참고했다는 말입니다. 열왕기의 엘리사는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엘리사 예언자는 빵 한 개로 다섯 명을 먹였지만, 예수님은 빵 한 개로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말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구약의 엘리사 예언자를 훨씬 능가하는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헤맬 때, 하느님이 그들을 먹이셨다고 말합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말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면서,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땅에 와서 살도록 하셨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구약성서가 하느님이 먹이셨다, 마실 것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먹고 마시지 못하는 곳에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방하지 못하는 곳에 하느님이 그를 해방시키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제1독서의 엘리사 이야기에서 보면 사람들은 가진 빵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빵은 사람들의 눈에 형편없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누었더니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았습니다. 나누는 곳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고, 나누는 곳에 풍요로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나눔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숨결을 나누어 주셔서 우리의 생명이 있다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우리도 가진 것을 나누어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우리 눈에 부족해도, 나누는 우리의 실천 안에서 그것은 하느님의 축복이 되고 풍요로움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이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먹인 이야기를 하면서 성찬을 암시하는 것은, 성찬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을 나누면서, 하느님이 우리의 나눔 안에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듣고,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축복과 풍요로움의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배불리 먹었다는 사실에 집착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 먹을 것을 해결하려는 군중을 예수님은 떠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식주(衣食住) 해결의 수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미는 나눔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질도, 지식도, 자격증도 모두 우리 자신을 가꾸고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인도 흔히는 하느님께 조금 바치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어 자기 자신이 풍요롭게 살 것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 때 끊어버리겠다고 약속한 유혹입니다. 유혹은 우리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세례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나눔의 풍요로움을 살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 약속을 실천하는 사람이 축복과 풍요로움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나눔으로 말미암은 풍요로움을 사는 길입니다. 나눔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기적입니다. 기적은 자연법이 설명하지 못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 우리 눈에 놀랍게 보이는 것이 기적입니다.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오늘 있다는 사실도 성서에는 하느님이 하신 기적입니다. 동쪽 하늘에 해가 뜨는 일도 성서에는 하느님이 하신 기적입니다. 모두가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고 자기 한 사람 풍요롭게 잘 되겠다고 노력하는 세상에, 이웃과 나누고 이웃을 도우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기적입니다.


하느님은 성당 안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왕으로 우리 생사의 대권을 쥐고 우리를 위협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바친 만큼 받겠다는 우리의 약삭빠른 이해타산에 동조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이 하셨듯이, 자기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는 사람 안에 살아계십니다. 이웃의 아픔에 참여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 십자가를 지는 마음 안에 살아 계십니다. 내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서 이웃이 하느님의 축복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는 데에 하느님은 살아 계십니다. 나누어서 이웃이 축복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지만, 하느님이 하시는 기적이기도 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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