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죽음' 뒤에 숨겨진 것은 없다
[반론] 김종성 기자의 <김대건 신부 '죽음' 뒤에 숨겨진 몇 가지>에 대해
지요하(sim-o) 기자
한국 천주교회의 9월 '순교자 성월(聖月)'과 관련하여 사회 일반의 관심 어린 시선들을 심심찮게 접했지 싶다. 세계 종교로서 가톨릭 교회의 위상, 신자 수 500만에 이르는 한국 천주교회의 성장, 한국 사회의 발전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세운 지대한 공헌 등과 관련하여 볼 때 일반의 관심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접한 김종성 기자의 <김대건 신부 '죽음' 뒤에 숨겨진 몇 가지/19세기 '조선-천주교-서양'에 대한 재평가 필요>라는 제하의 글도 사회 일반의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관심 증폭의 한가지 반영이리라 생각된다. 김 기자가 천주교 신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천주교회에 대해 예리하고 세밀한 분석 기사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이 망설인 끝에 내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김 기자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자 성월'을 폄훼할 목적으로 그 기사를 쓴 것이 아닌 이상, 김 기자의 관점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일단은 그 관심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김 기자의 관점들과 조화롭게 조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필자 주>
김대건 신부의 순교 뒤에 가려진 것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순교 성인들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대 전반에 대한 매우 폭넓은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고 있다.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정보와 지식의 토대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은 수많은 서적과 인쇄 매체들이 신자 대중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미 다수의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순교와 관련하는 당시 정치 상황과 사회상을 소상히 알고 있다. 100여 년에 걸쳐 참혹한 박해가 거듭하고 수많은 신자가 비참하게 죽어간 그 사실 앞에서는 '왜?'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라는 의문은 누구에게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당시의 실상과 배경 등에 눈을 돌리게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특히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에 대해서는 여러 전기를 통해 순교와 관련하는 '전모'를 알고 있다. 김 신부의 순교에는 당시의 미묘한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되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최근 12권으로 완간된 방대한 <한국가톨릭대사전>에도 김 신부 부분을 보면 김 신부의 자세한 행적과 함께 순교 당시의 정치적인 문제도 소상히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신자 대중에게 순교자들의 순교 사실만을 단편적으로 알게 하지 않는다. 순교와 관련하는 종합적인 사항들을 폭넓게 알도록 권고하고 끊임없이 지식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눈으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순교 사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에 대해서도 이미 확실한 지식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성당에서는 천주교를 박해한 조선 정부를 '사탄'으로, 천주교의 조선 전래를 도운 프랑스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을 '보호자'로 인식하면서, 일상생활로 돌아와서는 서양 세력을 '침략자'로, 조선 정부를 '패배자'로 인식하는" 식의 '자기모순'에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을 자기모순으로 보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고 유치한 도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들은 우리의 사고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양립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들을 굳이 모순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더러 부분적으로 상충하는 인식들도 종합적인 인식을 위해서는 필요하며, 부분적으로 상충하는 인식들이 종합적인 인식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모순도, 혼란도 아니다.
그것을 굳이 자기모순이요 혼란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김대건 신부 순교의 배경을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살피더라도 순교 사실과 순교의 가치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순교의 장엄한 가치는 더욱 찬연하게 빛날 뿐이다. 결단코 한국 천주교회 신자 대중 앞에서 김 신부의 순교 뒤에 가려진 것들은 없다.
김대건 처형, 종교적 문제인가? 정치적 문제인가?
조선 정부의 김대건 신부 처형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문제를 구분하여 파악하려는 것은 난센스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순교는 정치적인 문제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정치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순교란 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도 당시의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영국 헨리 8세의 이혼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참수형을 당한 토마스 모어의 죽음도 정치 문제와 관련이 있는 순교였다. 100여 년에 걸쳐 1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조선 정부의 천주교 대 박해들(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가 결부된 것이었다.
외세와 관련하는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더라도, 권력층 내부의 권력다툼이라는 정치 상황이 가세하여 참혹한 종교 박해를 부른 것이었다.
김대건 신부 시절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서세동점'으로부터 자국의 주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가장 절실한 화두였다"면, "서양 종교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은 매우 모순적인 견해다. 서양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곧 서세동점을 용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은 결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19세기 조선 정부가 김대건 신부를 처형한 것은 그러한 쇄국 차원의 일이었다. 절대로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조선 정부는 김대건이 서양 세력의 '앞잡이'가 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처형을 결정한 것이지, 결코 그가 서양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은 더욱 모순적이고 조악한 주장이다.
조선 정부가 김대건 신부에게 최종적으로 얻어내려고 한 것은 서양 세력의 앞잡이 포기가 아니라 신앙 포기였다. 최종적인 목표가 그것이었기에 그가 배교를 하도록 온갖 회유를 다하였던 것이다.
박해 시대 순교 상황에 처한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표시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앞에 놓인 성물(聖物)을 발로 밟거나 침을 뱉으면 곧바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간단한 일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그들은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조선 정부의 관리들이 김대건 신부에게 요구했던 것은 배교이지, 정치적 관련 사항이 아니었다. 김 신부는 오로지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를 택한 것이지 서양 세력의 이익을 위해 죽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김 신부의 죽음에 서양 세력과 맞서기 위한 당시의 정치 상황이 결부되어 있다 하더라도, 김 신부의 순교 사실은 변함이 없고, 처절함 속에서 피어난 찬연하고 영광스러운 순교의 가치는 조금도 퇴색될 수 없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임무는?
나는 19세기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선교사들을 이용하여(또는 앞잡이로 삼아) '서세동점'을 꾀하였다고 보지 않는다. 조선은 오히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동아시아 진출을 시도하는 프랑스 정부의 기세를 현실적 방편으로 이용했다고 본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조선 땅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복음 전파였다. 그들이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이익을 위해서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대건 신부가 서양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기 위한 일을 하다가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그의 사제로서의 임무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국내 잠입을 안내하는 일은 천주교 신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신자들에게는 성직자들의 성무 집행이 있어야 신앙생활이 온전해질 수 있고, 포교도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었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 포교 사업의 일환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의 국내 잠입을 안내한 것이지 결코 '서세동점'을 돕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는 일을 했다고 해서 "김대건 신부의 실제 임무가 조선에서 포교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선교사의 한국 잠입을 안내하는 역할"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극히 좁은 시야가 아닐 수 없다.
"서양 세력의 아시아·아프리카 침략에서 천주교가 첨병 역할을 했다"는 말도 오로지 정치적 관점만을 앞세우는 단순 논법이고, "김대건 신부가 그런 서양 종교의 첨병 노릇을 했으니 결과적으로는 서양 세력의 조선 침투를 도운 (반민족적인) 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 신앙을 최고 가치로 삼은 이들의 '복음 전파 사명'을 너무 무시하는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당시의 전체적 실상이나 그 후의 우리 민족의 개화를 놓고 볼 때 "서양 세력에게 수난을 당한 조선"이라는 표현도 지극히 부분적이면서도 지나치게 확대된 관점이고, 더욱이 "민족사적 측면에서의 과오"라는 표현은 너무 심한 비약이다.
이 대목에서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을 하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은 시대 상황과 현실 조건의 중심에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순교의 기회를 베푸신다. 또 그것을 장대한 하느님 역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게 하신다.
"조선은 서양 세력의 침략 앞에서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었고 김대건 신부의 죽음도 그 과정에서 나온 사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선도 피해자이지만, 서양 세력에게 결과적으로 이용당한 당시의 천주교회도 결국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동시에 가르쳐야 할 것이다"라는 말은 어느 면으로는 천주교 신자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견해일 수도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와 관련하는 시대적 배경과 정황들을 이미 소상히 알고 있다. 그러나 민족사적 차원에서 자괴감을 갖는 신자는 없다. 그리고 아무도 피해의식을 갖지 않는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가 당시에는 참혹한 비극과 엄청난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것은 곧 승리와 영광의 증표가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고귀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최고의 긍지로 승화한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정치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지극히 부분적이고도 도식적인 견해를 폭넓게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종교적 가치와 관점을 능가할 수는 없다. 한국인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의 순교는 복음이 이 땅에 가져다준 또 하나의 복음이고, 복음의 열매다. 하느님이 이 땅에 내리신 값진 선물이고 영광스런 보화다.
한국인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의 순교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상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가장 힘차게 드러내는 것이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공경한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보화'는 이미 '영원' 속에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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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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