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0일 (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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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강성형씨가 올린 이단적, 범신론, 불교적 글(게시 번호 68684및 Re: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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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향 [cpark] 쪽지 캡슐

2004-07-14 ㅣ No.68802

Re:묵상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교회감독이 유배당한 신자들에게 고함

...존 쉘비 스퐁, 김준우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펌)이정모(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글 중에서,

 

 

공간적 하늘에 초자연적인 인격적 존재로서 천사를 거느리고 계시며,

전능의 "왕"으로서 인간사에 일일이 개입하시어 좌지우지하시며,

인간들이 수많은 고통과 전쟁을 겪도록 내버려두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영광과 찬송을 받기 위해 존재하시며,

최후의 날에 인간의 잘잘못을 심판하여 상과 벌을 내리는 그러한 "유치한"

유신론적(theistic) 개념의 하나님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음을 스퐁 감독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개념을 고집하는 한 인간은 참 하나님과는 먼 유배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유아기적 개념의 인간적, 인격체적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 안에 내재하며 생명의 무한한 중심이며,

존재의 근거이며, 사랑의 원천이며,

끊임없이 우리의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성이 되도록 불러내는 그 무엇이라고 스퐁 감독은 본다.

또한 전통적으로 신약성서에서 전개된 예수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당시 기독인들의 내적 응집성과 외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몇 십 년에 걸쳐 수정되고 재구성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의도적 담론이었기에,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 내재적 의미를 중심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본다.

 

초기 신약성서에는 인류의 대속자, 구원자로서의 예수의 개념이 없었고

후대 로마의 점령 하에서 교인들의 내부 결속과 유대교와의 관계 규정을 목적으로

구원자, 속죄양의 개념이 뒤늦게 도입되었음을 지적한다.

원죄의 개념과, 예수를 통해 속죄함을 받아 인류가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 구원된다는 개념의 한계를 지적한다.

즉 성경을 역사적 관점과 해석학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육신이 된 예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아니라 인간 예수,

하나님 의미의 본질인 사랑의 삶, 내어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 의미를

인간에게 보여준 예수로서 재 개념화하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기독인, 특히 한국 기독인들이 온갖 모순을 안고 있는

현 기독교계의 교리와 신앙관에 얽매여

참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첫째는, 우리 각자의 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이요,

둘째는, 개인적, 집단적인 지적 게으름 때문일것이다.

참 기독교 신앙의 필수 전제조건은 깊은 생각, 정직성, 용기라고 본다.

 

 "하나님은 저 밖의 하늘에 초자연적으로 존재하며,

때때로 우리의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영향을 주며,

우리의 믿음의 수준과 선악의 행동 수준에 따라

최후의 심판 날에 상과 벌을 내리는 인격적 존재" 라는

초등학교 수준의 고정관념이

오히려 참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과 인간과의 참다운 관계를 가리우는 방해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잘못된 신앙관을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깊이 성찰하여 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직하고 용기 있게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 참 기독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것, 그와 함께 하고 하나일 수 있는 것은

내가 나의 목숨과 사랑과 존재를 예수처럼〈내어주는 정도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나의 목숨과, 사랑과 존재를〈내어주는 정도까지만〉" 나는 그와 하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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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정직한" 믿음, 깊은 사유에 바탕을 둔 믿음, 생각하는 믿음이다...."산타클로스"의 "본말이 전도"되어있는...지금의 현실같이 ..."예수"의 "역사적 실존의 의미"도... 그렇게 변천되었을 것이라 나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복음의 天人合一] ....

하느님이 계시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하느님이 계시다
내가 만약 없다면,
하느님이 계신줄 내가 어찌 알겠는가?

하느님이 내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안에 있으니
그분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삶을 살지 않는가?

그런고로
나의 本性이 되시는
그분을 떠나
내가 어찌 살겠는가.....

(제임스강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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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人合一" (天上天下與我一切)

[1] -----------------------------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切 "

"천지는 나와 동일한 바탕이며,"
"만물은 나와 한몸이라."
천지만물이 "나"이고 내가 곧 천지만물이니,
따로 존재하는 "나"를 찾을까!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연기법(緣起法)에서,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큰 생명체라고 하는
의정불이설(依正不二說)을 밝힌 바 있다.


[2] ---------------------------

노장사상에도 능통했던 중국의 "승조"라는 승려의 모음집인 "조론"中에
천지는 나와 같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모든 만물은 나와 함께 한다.
..."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爲一"는 부분이나,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中에
천지가 나와 함께 살아가고 만물이 나와 하나가 되는 자리이며
..."天地輿我竝生立 萬物與我爲一"

또한,
민속전통의 세계관도 마찬가지였으니,
천지가 나와 한 뿌리이며(天地與我同根)
만물이 나와 한몸(萬物與我同體)이라는 말이
바로 그뜻이 아니겠는가?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도
그와같은 이치일것임에 틀림없으리라.

복음에서 깨달은 위의 싯구절속에서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같은 맥락의 의미를
왜 주셨는지 누구나 한번쯤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히2:11)
그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한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

위 승조라는 중의 깨달음과 무엇이 다를까?

석가의 케리그마라는<아함경>에서는 연기(緣起)를…,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고, (此無卽彼無)
이것이 멸하면 곧 저것이 멸한다. (此滅卽彼滅)
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3] -----------------------------------

지금도 그러하건만...,서구문명의 무참한 살육앞에서
1800년대,
수쿼미시 인디언의 추장 "시애틀"은 윗글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미국정부에 보냈었다고 전해집니다.
(내용중에서)

...대지 위에 모든 것들은
...그것이 생물체이든 무생물체이든
...우리 인간의 형제다.

...우리는 안다.
...신은 하나라는 것을...
...빨간 사람(인디언)이든 흰 사람이든 사람은 나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다.

...마지막 남은 빨간 사람이
...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그림자가 될 때,
...그래도 해안과 숲은 여전히 여기 있을까?

나는 자연친화력이 물씬 풍기는 그 귀절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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