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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성인전 9, 聖 샤스탕 (야고보 1804~1839)완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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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구 [xhak59] 쪽지 캡슐

2004-10-16 ㅣ No.72887

2편이어..

샤스탕 신부는 입국할 때 입었던 상제 옷을 입고 험한 산길을 헤매야 했고, 음식물은 소금에 절인

 

야채 따위로 공복을 채워야 했으며, 밤새도록 고해를 듣고 미사를 드린 다음, 그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마을로 길을 떠나야 하는 고난의 연속 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837년 7월 중순에는 지방에서

 

전교 중이던 모방 신부가 병이 나자 그에게 달려가 병자성사를 주고. 다행히 모방 신부는 샤스탕의

 

간병으로 건강이 회복 되었으므로, 샤스탕 신부는 남쪽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 전교에 힘씁니다.

 

그 무렵 제 2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가 그 해 12월말에 조선 입국에

 

성공 하면서, 이로써 조선 교구는 교회 창설 52년, 교구 설정 7년만에 주교와 선교사를 함께 모시게

 

되어 명실공히 모든 조직을 갖추게 되는 경사를 맞게 됩니다. 이에 주교와 샤스탕, 모방 두 신부는 함께

 

서울의 교우들을 열심히 돌 봅니다, 그러나 세 서양인 성직자가 조선에 들어와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관헌에서는 당쟁(세도정치,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여파까지 곁들여, 천주교의 탄압을 강화하여

 

1839년 기해년(己亥年) 교인들을 잡아드려 피를 흘리게 하면서, 마침내 외국인 선교사를 잡으려는

 

관헌의 추적으로 박해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갑니다. 이에 피신한 주교는 점점 심해지는 박해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전교 중이던 샤스탕 신부와 모방 신부를 불러 이에 대처할 방도를 논의 하면서. 주교는

 

혼자만 남고 두 신부는 청국으로 피신할 것을 종용하나, 두 신부는 끝까지 함께 남기를 다짐하며,

 

각기 맡은 지방으로 내려가 전교에 힘쓰는데. 그러나 앵베르 주교는 배교자 김순성(金順成)의 간계로

 

잡히고 맙니다, 관헌의 상황을 파악한 주교는 두 신부를 잡기 위해 죄 없는 교우들의 희생이 커질 것을

 

우려해 두 신부에게 자수할것을 권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어 서신을 받은 샤스탕 신부는

 

곧 모방 신부에게 달려가 함께 자수하기로 결심하고 교우들과 외방 전교회에 보내는 고별 편지를 쓴

 

뒤, 9월 6일 홍주(洪州)에서 관헌에 자수합니다. 한양으로 압송된 두 사람은 주교와 함께 포도청에

 

수용되어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샤스탕 신부는 판관 앞에 나가 진술 합니다..

 

죄인 정 야고보는 사뢰오, 저는 널리 천주교를 전교하기 위해 1만리의 먼길을 무릅쓰고 1836년 12월

 

조선에 들어와서 정하상의 집에 머물렀나이다. 중국에서 올때는 바닷길을 건너오고 의주와 변문에는

 

육로로 왔소이다. 안내자의 이름을 말씀드리는 것은 비단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칠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해를 면치 못하는 것이며 십계명은 이를 허락하지 않소이다. 해마다 저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돌아 다니면서 교우들에게 강론을 하고 성사를 주었습니다. 모두 얼굴이 달라서 성명을 전혀 기억을

 

하고 있지 않소이다, 의복과 음식은 대게 교우들로부터 받았소이다. 이후 샤스탕 신부는 앵베르주교,

 

모방신부와 함께 역사상 서양인에 대한 최초의 판결로 사형이 선고되어 1839년 9월 21일에 군문효수

 

(軍門梟首)라는 극형으로 새남터에서 참수 됩니다. 그 때 샤스탕 신부의 나이는 37세로 조선 입국

 

2년 9개월만의 일 이었습니다. 그의 시체는 다른 두 성직자의 시체와 함께 교우들의 손으로 신촌 노고산

 

(그후 이 자리에는 세스페데스 신부소속 교단 예수회에 의해 서강대학이 세워졌음)에 묻혔다가 1843년

 

관악산 삼성산(三聖山)을거쳐, 1901년 11월 2일 명동 대성당 지하묘소를 거쳐 절두산성지 지하 유해실

 

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순교 정신은 1925년 7월 5일, 교황청에서 치른 장엄한 시복식에서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복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 끝,

 

(참고문헌)달레 한국교회사, 유홍렬 한국천주교회사, 박노연著 103위 성인전,

 

다음편은 聖 이광헌 (아우구스티노,1786~1839)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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