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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74422 번정치적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 남. 북 민간 화해사업 (8) 박여향 형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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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 [khubosco]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74611

74422 번
정치적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는, 남. 북 민간 화해사업 (8) 박여향 형제님
여기 정의채 신부님 말씀에
형제님께 드릴말씀이 다있습니다
답글 쓰신분들께도...
--------------- [원본 메세지] ---------------------

제    목 : <b>`국정혼란 원인은 권력핵심 386`(정의채 신부님 명동성당 강론에서)</b>
현대인을 향한 영혼의 울림
서울평협 ‘하상신앙대학’ 제9강의
2004. 11. 9(화) / 명동대성당


21세기 가톨릭 지성인의 역할과 사명
-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미래지향적인 삶,
특히 가톨릭신자 지성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의미와 역할, 사명 -

정의채 신부
(석좌교수, 서강대학교)
                 
<정의채 신부 약력>

1953                사제수품
1957~1961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과 그레고리안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연구
1961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철학박사 학위
1961~1985        가톨릭대학교 철학교수
1967-1971        가톨릭대학교 부학장
1972~1973        독일 뮌휀대학교와 뮌휀 S.J 철학대학에서 철학 연구
1972~1985        가톨릭대학교 부설 중세사상연구소 소장
1974~1976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1981~1985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부위원장(실무 총책임자)
1988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성당 주임신부
1988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창설 및 초대 소장
1988~1991        가톨릭대학교 총장
1992~1993        서강대학교 부설 생명문화연구소 창설 및 초대 소장
1992~1994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창설 및 초대 이사장, 현 상임고문
현재 서강대학교 석좌교수

                < 차  례 >

        I. 서론                                                           3
       
        II. 가톨릭 신자의 신원                                         5

        III. 우리의 사회현실과 대처방안                                 7

        IV. 가톨릭 지성인의 현재와 미래의 사명                        28
            - 모든 선의(善意)의 사람과 같이 -


I. 서론

  제가 오늘 강연할 제목은 여러분이 벌써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21세기 가톨릭 지성인의 역할과 사명-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지성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의미와 역할, 사명-󰡑이라는 긴 부제가 붙은 제목입니다.
  먼저 저의 강의를 듣기위해 이 강좌에 친구들과 같이 등록했다는 말씀을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각별한 감사의 정을 표하며, 저의 변변치 못한 강연을 들어주실 이 자리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1세기 가톨릭지성인의 역할과 사명‘이라는 제목을 보며, 또 이 강연을 우리의 국운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 명동성당에서 하게 되므로 제게 와 닿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놀라운 광경 속에서 모세에게 내리신 사명의 말씀입니다. ’ 모세는 … 양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렘으로 갔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 하고 생각했다. 모세가 보러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셨다. 그가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 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에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다… 정령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더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의 자손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내라󰡓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에집트에서 이끌어낼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다는 징표가 되리라󰡓 (탈출기-출애굽기, 3,1-12).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 처지에 따라 이 거룩한 땅 명동성당,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해온 이 명동성당에서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깊이깊이 자각하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이런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사명은 시대적, 지역적 배경에서 깊게 혹은 엷게, 넓게 혹은 좁게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명동성당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잠깐 동안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명동성당은 한국천주교의 요람이며 쇄국 한국을 개국으로 이끌어간 원천이고 그 상징이었습니다. 1백년에 걸친 모진 박해와 1만 여명 혹은 몇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피의 희생으로 우리 순교선조들은 이 땅을 정화하고 세계로 열게 하였으며 그 상징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명동성당이었습니다. 당시 명동성당은 그 웅장한 모습으로 온 장안을 놀라게 했으며 한국 근대화의 가시적 현현(現顯)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 본부는 민족문화 창달의 앞서간 산실이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1907년에 벌써 순 한글로 경향신문을 그 부록 보감(寶鑑)(후에 󰡐경향잡지󰡑로 개명)과 같이 발행하여 그 당시 누구도 생각 못했던 한글문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 제목이 경향(京鄕) 즉 서울과 향리로 되어 있어 각지의 성당 신부들이 제보원이 되어 이 땅 방방곳곳의 소식을 수준 높게 전해 당시에 벌써 4천2백부라는 놀라운 부수로 민중 계몽에 앞장섰습니다. 민족문화의 자랑인 󰡐조선말 사전󰡑 편찬이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 1910년이고 우여곡절 끝에 1928년에 이르러서야 조선어 사전 편찬회가 창립되었으니 한국 천주교회가 한국문화 창달에 얼마나 선구적 역할을 했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아마도 󰡐경향신문󰡑은 당시 한국지성들에게 이런 우리말운동에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을 추측하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명동 성당은 해방 후 좌우충돌의 격동기에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한 특히 적색, 백색 독재에 항거하는 민족정신의 근거지였습니다. 이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하는 천주교는 이승만 정권 독재화에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공산 남침에 극력 항거했습니다. 군사정권과는 정의, 인권, 자유, 민주, 평화로 맞섰습니다. 또 한가지 덧붙여야 할 것은 이 명동성당은 38선이 그어지면서 특히 6.25동란을 거치면서 1천만을 넘는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상봉의 장이 되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남녀들의 만남의 장소입니다. 또한 명동성당은 민족정기의 분출처입니다. 그러기에 안중근 의사도 이 성당을 드나들며 그 의(義)로운 기(氣)를 가다듬었습니다. 언제나 민족에 암운이 드리울 때, 더 나아가서는 인간성 자체가 위기를 만날 때 명동성당은 빛을 발하여 민족과 모든 인간에게 나아갈 길을 비추는 곳이며 불의와 부패, 압제, 패륜이 판을 칠 때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한 곳이며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곳입니다. 또 명동성당은 앞으로 인류사가 하나의 인류를 지향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야 할 곳입니다. 명동성당은 하느님의 창조 경륜에 따라 하나가 되는 인류의 삶에로 한국을 열어가며 한국으로 하여금 하나의 인류사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할 곳입니다. 여기에 또한 명동성당의 큰 사명과 세기적 큰 책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명동성당은 민족사와 영욕을 같이하였으며 특히 고통과 절망의 시기에 위안과 희망으로 민족적 새로운 힘 산출의 본원지가 되었습니다. 민중운동이 과격해져 미움과 증오와 투쟁으로 치달을 때 명동성당은 복음의 정신으로 정의와 사랑, 화해를 이루는 곳, 그 누구와도 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 위대한 정신을 발휘하는 곳, 민족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곳, 중재자 화해자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이 명동성당은 앞으로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인은 명동성당 주임신부시절, 특히 부임하는 날이 바로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1998.2.25)이었는데 노태우정권은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며 명동성당에서 성난 젊은이들이 일찍이 없었던 가장 격렬한 데모를 했던 것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경찰의 최류탄 가스 또한 그 때까지 유례가 없었던 가장 독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전장터를 방불케하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명동성당은 그날 주임신부의 부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성당 정면으로 부임할 수가 없어 옆의 가톨릭회관의 좁은 통로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스탄 연기 속에 부임하였습니다. 그 충돌의 내용인즉 그 당시 여(與) 즉 정부 측은 누구를 막론하고 악(惡)이고 그 반대편은 즉 데모대와 야(野)는 다 선이라는 형국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는 누구든지 성당에 들어올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움과 증오 쇠꼬치와 투석이 난무했고 경찰의 몽둥이와 가스차는 불과 연기를 내뿜는 것이었습니다. 적대국과의 전쟁터에서도 이럴 수는 없겠지 하는 지경이였습니다. 저는 본당 주임신부로서 단호하게 이런 미움과 폭력의 난무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폭력의 난무는 교회의 본질적 행사인 미사 특히 혼인미사, 장례미사 등 모든 종교행사를 이행 불능케 하였으며 몰고 가 교의강좌 등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교회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명동성당은 더 이상 성당이 아니었고 성당을 빙자한 정치문제로 인해 미움으로 가득 찬 폭력충돌의 장이었습니다.
  저는 주임신부로서 이 성당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의 목자이며 아버지라는 점을 명시하여 만일 여가 죄인이라면 그들은 더욱더 성당에 들어와 기도하며 참회하고 하느님과 화해해야 하고 또 사람들과도 화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누가 죄인인지 선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이라는 점을 역설, 결국 폭력적 미움의 데모를 잠재우고 투표에 의한 진정한 민주화의 길을 명동성당에서 열었던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새삼 기억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명동성당의 본 힘과 사명은 하느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창조의 경륜에 따라 인간의 영원한 구원이 그 본령이며 사명인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에 근거하는 것이어서 사람과 하느님이 만나는 곳, 화해하는 곳, 은혜를 받는 곳이며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화해하는 곳, 한마디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곳,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따라서 명동성당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장소, 민족의 성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신자들의 마음의 고향, 현세 삶에 있어 영원에로의 길이 비쳐지는 곳, 희망과 힘이 솟아 오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명동성당은, 영성의 힘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터입니다. 앞으로도 명동성당은 이와 꼭 같은 역할을 온 아시아인과 세계인에 대해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빛이 동방에서부터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II. 가톨릭 신자의 신원

  여기에 이르러 우리는 먼저 이 제목이 제시하는 바 가톨릭 신자란 무엇인가, 우리의 현 상황에 있어 그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절실한 문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가톨릭 신자란 무엇인가라는 가톨릭 신자의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성에 몰리게 됩니다.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구속에 힘입어 영세를 받아 본죄(본인의 죄)와 원죄(원조로부터 유전 받아오는 죄)를 다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즉 영원한 삶을 약속받은 신분인 것입니다. 또 이런 상태를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교리에 근거하여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 즉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와 같이 되어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높은 지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신자들은 하느님의 창조경륜에 따라 이 세상 삶을 통해 이룹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 세상 질서가 올바르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 다른 누구보다도 더 큰 책임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 교리에 더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한다고 가르쳐 신자들의 더 높은 신분위상을 밝혀준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에 근거합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베드 2,9). 본디 그리스도는 그의 사제직을 천주성부께서 받고 하늘에서 내려와 희생적인 지상 삶을 삶으로써 특히 하느님 앞에 만민의 죄를 속죄하기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또 삼일만에 부활함으로써 그의 사제직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고귀한 사제직 일부에 신자들도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향유하는 사제직을 공동사제직이라고 합니다. 사제들이 서품으로 받는 사제직을 직무적 사제직이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제직 일부를 평신도들에게 부여하신 것은 그들이 행하는 신심생활과 세속의 삶 전체를 성령 안에서 행하여 그들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영적 희생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의 참여로 성체성사로 주님의 몸을 받으며 주님의 몸과 같이 성부께 봉헌되어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신도는 그 공동사제직으로 세상 어디서든지 또 무엇을 하든지 성스러운 예배자로서 자기의 삶 전부와 세상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예언직은, 성부의 나라를 선포하신 위대한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을 완전히 나타내실 종말시기까지 성직자뿐만이 아니라 평신도를 통해서도 당신의 예언직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언직은 평신도가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의 힘이 가정과 사회에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드러내고 빛을 발하게 하는데서 수행됩니다. 이 예언직은  평신도들이 이 현세 삶을 큰 희망 중에 영원으로 가는 순례자로서 약속의 아들들임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데에 수행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에 암흑 중에 혹은 잘못된 세상 질서를 형성해가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빛과 진리와 선으로 바로잡아 가며 근본적으로는 복음의 정신을 따라 세상 삶을 올바로 살아감으로써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평신도는 그 생활로써 이기심 일변도이며 권력과 금력, 쾌락에 젖어버린 인간의 마음에, 인간본연의 희망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마음에 세상 삶에 있어서도 올바름과 영원한 희망을 다시 일으켜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합니다. 평신도는 세상 삶 속에서 그 왕직을 행사해야 합니다. 성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 높임을 받으시어 당신 나라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에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 국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이런 왕직을 받은 평신도들은 왕적 자유를 얻게 되며 자기희생과 성스러운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이기고 그리스도 왕께 봉사하며 겸손과 인내, 섬김으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이며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고 사랑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평신도들은 죄를 극복하고 현세 삶에서 선(善)한 삶을 삶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런 신분에 있는 평신도들의 세계질서 즉 세상 삶 안에서 21세기에 이행해야 할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에서 그 정곡을 찔러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힘의 원천 즉 깊은 영성은 「전례헌장」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맨 먼저 제정된 헌장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교의헌장」을 제장했는데 이 헌장에서는 평신도들의 위상을 위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의 참여, 예언직에의 참여, 왕직에의 참여로 높여놓았습니다. 이런 평신도의 높은 신분과 능력으로 교회는 세상에 열린 교회 아지오르나멘토 aggiornamento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자신을 드러내며 세상질서를 하느님의 창조 경륜에 맞갖게 이끌어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나타난 것이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이었습니다. 이 헌장의 첫 부분의 주류사상이 그 당시 왕자처럼 세상에 군림하던 공산주의에 맞추어졌으나 그 제목이 너무 직접적이라 하여 무신론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전 세계에 걸친 신자들의 이 헌장의 정신 실천과 이 헌장의 정신에 근거한 선의의 사람들의 의식변화는 급기야 무신론에 근거한 공산주의와 극좌 사회주의 사상과 그런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또 한편 자본주의의 무제약적 착취성을 인권과 정의로 경고하며 하느님의 창조 경륜에 따른 정치질서, 경제질서, 국제질서 등을 제시, 하느님의 모습으로서의 인간존중의 세계 질서를 정착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작용을 한 주역들은 물론 위와 같은 신분과 사명을 자각한 평신도들이었으며 그들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처한 사회질서 속에서 제가 받은 오늘의 강연의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라서 종교적 인생관이나 깊은 영성에 대해서는 훌륭한 분들이 앞서 강연들에서 많은 말씀들을 하셨기에 여기서는 지성인 평신도들의 사회적 사명에 치중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평신도들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참여와 사명에 대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직자가 정치에 직접 간여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특히 사목자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목자는 본당의 신자들을 위한 존재인데 신자들은 여당에도 야당에도 있고 중간적 입장에도 있는 것이어서 일정한 정당이나 권력기구와 야합되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여당이든 야당이든 또 중간적 신자들이건 간에 주어진 입장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양심에 따라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올바른 사회질서 건설에 열성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교회는 사회생활전반은 평신도들의 고유영역임을 분명히 합니다. 따라서 성직자는 정치권력과는 불원 불근(不遠 不近)의 입장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직자는 정치적으로 어느 입장에 있는 인사이든 인간적 친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는 성직자로서 또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정치권력과는 무관하며 어느 편에든 옳고 그름을 말할 뿐이라는 입장인 것을 여기서 먼저 분명히 말해두고 신자들의 사회참여와 사명에 대해 강연하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엄청난 지위를 획득한 것이며 그런 신자의 정체성을 현세의 삶 전반에 걸쳐 실천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III. 우리의 사회현실과 대처방안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삶의 여건 즉 현재의 상황에 대해 고찰하며 신자들의 사명에 대해 말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정책을 감행함으로써 국민의 생활전반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으며 근래에 이르러는 그 어려움이 점점 더 심해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희망을 연발하지만 또 2년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흘렀지만 밝은 앞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이며 또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저간의 이런 점들을 나름대로 짚어보며 가톨릭 신자들 특히 가톨릭 지성들의 오늘과 내일의 사명을 성찰하여 3천년 대 초반 수세기간의 인류문화도 짚어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이 발족한 후 우리에게 평안한 날이란 하루도 없었습니다. 들볶이었습니다. 국민은 두동강 세동강 쪽쪽이 났으며 분열만이 계속됐습니다. 전국은 마치 전쟁터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개혁이란 한 단어로 생겨난 불편과 분란이었습니다. 이 나라 방방곳곳은 노무현대통령 취임 후부터 계속되는 파업과 소요, 실언, 실정, 요소요소에 정치권력 지향적 386세대 등장, 급격한 경기후퇴, 민생고가 나날이 가중되어 갔습니다. 마치 6.25때와 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드디어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는 측근비리로 급격 하락이란 보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재신임 묻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하여 여론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헌재는 불가 판정이었습니다. 드디어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찬193대반2로 가결됐습니다. KBS, MBC 등 TV와 친노신문들 그리고 젊은이들의 극렬데모행렬은 국회비판으로 일관했습니다. 시민단체들도 가담했습니다. 나라는 온통 수라장이 됐습니다. 전국이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글쎄 헌법으로 보장된 헌재의 결정이 내리면 되는 것이고 또 총선이 곧 있을 것이니 국민들이 선거로 판가름하면 될 것인데 왜 그리도 미친 듯 야단들일까 미숙 한국인 이란 평을 피할 길 없게 되어갔습니다. 물론 국회가 잘못했습니다. 탄핵 전에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했어야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국회는 국회대로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행한 것입니다. 국회의원도 국민이 뽑았습니다. 어쩌면 대통령 선거 때보다 국회위원 선거는 지역적으로 더 가까운 인물 더, 잘 알 수 있는 인물을 국민들이 직접 뽑았기 때문에 그들의 권한도 존중해야 하되 헌재의 결정과 선거의 결과로 판가름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위일변도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국민의 수준이 그 정치 수준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상 싶었습니다. 헌재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집무에 복귀했으나 대통령의 선거법위반, 헌법위반이 신란히 지적됐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극심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기각은 잘된 일이었으며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심기일전 전 국민을 끌어안는 참으로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 바랬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런 기대는 허상이었음이 더 선명히 드러나게 되어 이 땅의 앞날이 몹시 암울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단적인 예가 근일 있은 헌재의 노정권이 운명을 건다고 한 개혁의 핵심중의 핵심과제인 ‘수도 이전계획’에 대한 위헌판결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노대통령의 절대 지지하에 국회에서 4대개혁안 즉 국보법 폐지, 친일 및 과거사규명법, 신문 등 언론관계법, 사립학교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보법 폐지는 국보법 자체가 악법이니 법리론 이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한 국민 여론이 많이 엇갈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말입니다. 민생이 최악의 상태인데 이런 것에 매달려 국력을 쏟아 부을 여지가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반대한 지난날의 독재정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국민이 정권을 쥐어 준 것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것인데 국민 대다수는 지금 죽겠다고 아우성인 이 때 여당과 정부는 자기들의 이상이나 기분에만 도취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택시기사 한분은 어느 날 오후 3시 쯤이었는데 벌컥 화를 내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그 양반은 그 출신으로 보아 서민충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민층을 잘 살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찍어주었는데 부익부 빈익빈의 간격만 넓힌다며 어느 사이엔가 청와대에는 이른바 신 부르주아가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근래에는 전의 ⅓도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기화되는 경제 불황의 결과이겠습니다. 어찌 말하면 지금 정부와 여당에게는 민심은 안중에도 없는 독선과 아집, 자기들의 기분풀이로 일관 반 민주적 행태를 서슴치 않는성 싶습니다. 국보법 폐지에 앞서 여당 의총에서 격론이 버려졌을 때 어떤 위원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했답니다. 국가가 이른바 무지 무경험 무능의 정치권력 지향적 386세대의 한풀이의 장, 이상의 실천장이 아닙니다. 물론 이른바 386세대는 지난날 큰일을 해냈습니다. 광주사태 등 수많은 고통과 말 할 수 없는 희생을 치르며 군사정권을 종시시켰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그들 중에는 예체능계와 학계 특히 자연과학계에서 국내외에 걸쳐 명성을 떨치는 이들과 학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침식을 잊은 채 밤낮으로 자기 전문분야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학생데모가 날로 심해가던 1970~1980년대에 나라의 앞날을 감당하며 빛낼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불 밝히는 학생들이라고  수 없이 반복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권력 지향적인 운동권 학생들 이른바 오늘의 386세대는 별로 공부하지 않고 데모에 전력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는 그들이 국가의 큰 권력을 장악하게 되니 이 땅은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무지와 만용의 소산입니다.
  지난 추석 민심에도 국민들은 ‘좀 먹고 살게 해 달라’는 등 아우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한의 소리로 울부짖는 소시민들, 밑바닥 인생들의 마음에는 청와대의 고대광실에서 쉴새없이 토해내는 장밋빛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일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장단 맞추는 비서님들, 수행원들을 즐비하게 거느리는 정부 각 부서장관님들, 여당의 국회의원님들의 말들은 역시 권력층 외의 국민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먹고 살게 해달라’는 울부짖음 그것은 인권의 기초입니다. 현금 북쪽 정권의 가장 고통스러운 것도 아사지경을 헤매는 인민들을 먹여 살리는 일일 것입니다. 이 기초적 인권이 흔들릴 때 지금 정권의 핵심이라는 386세대의 지난날의 인권과 민주화 투쟁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은 오늘 와서 보니 역시 정권욕의 일종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때 자기들이 당하던 군사 독재정권과 같은 수법이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신공안이니 또 다른 어설프기 짝이 없는 독재 출현이 반민주적 탄압, 국회에서 간첩 만들기 등의 옛날 그들이 타기하던 행태를 그대로 모양새만 바꾸어 재연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저와 같이 나이가 있어 이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몸으로 겪으며 그 와중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승만 독재정권 말기 야당 민주당의 선거구호가 연상됩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그것입니다. 이런 구호는 당시 절대다수국민의 마음속에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렇기에 노정권은 심기일전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게끔 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실업자중 태반이 젊은층이라며 20대-30대의 사망률 중 경제적 고통으로 인한 자살률이 최고라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생명욕에 넘쳐야 할 젊은이들이 실직, 생활고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니 아이러니 치고는 너무 심합니다. 젊은이들이 결사적으로 뽑은 대통령의 정책 밑에서 젊은이들이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면 우리 동양 덕치(德治)의 정서로서는 군왕이 스스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조차하게 될 것입니다. 선진국같으면 내각이 무너져도 몇 번 무너졌어야 했겠습니다. 외국자본이 투자가 격감한 것은 물론이고 국내자본마저 중국, 동남아제국으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몇 안되는 국내 최첨단 기술마저 국외로 불법적으로 또는 합법적으로 빠져나간다니 이 어찌된 정치이겠습니까. 민간인들의 돈의 외국유출 또한 막대하다는 것입니다. 민간인전문가 장관들은 386에 발목이 잡혀 경제부흥에 큰 제약이라니 이 나라가 어찌되어가는 것이겠습니까.
  민생고가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총리는 2007년에는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니 그 때까지 서민들은 이 생활고를 무작정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또 그때는 대선이 있을 것이니 무작정한 선심정책으로 경제를 위장하겠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아시아의 4마리 용중 선두를 달리던 한국경제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다 상승세인데 왜 나 홀로 추락입니까. 사정이 이런데도 행정수도 이전이다, 국가 보안법 폐지이다, 친일 및 과거사규명이다, 신문법 규정이다, 사립학교법 개정이다 등 현실과는 동 떨어진 문제들에만 여당과 정부는 골몰하니 국민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는 것입니다.
  국보법 폐지만 하더라도 그 법에 의해 많은 고초를 겪은 이들의 한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10여 년간 그 법 때문에 옛과 같이 고통 받는 사람들은 전무하다는 것이며 또 한편 새 대체 법으로는 간첩 잡을 법규는 다 빠졌다니 또 그것이 386세대의 주장이라니 그들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이냐의 국민들의 불안은 높아만 갑니다. 그러기에 국보법 폐지는 스스로 무장해제라는 말까지 국민들 사이에 퍼지는 것이 아닙니까. 필요할 때는 없앨지라도 왜 지금 그것이 이렇게 민생고가 극한에 달한 때에 최우선적 과제가 되는 것입니까. 더욱이 북한에서는 상응한조치가 전혀 없어 적화통일이념 그대로라는데도 말입니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여론은 60%이상이라는데 말입니다. 근일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AWSJ)지 사설은(10.25) “한국정권은 핵무장 北보다 자유언론에 더 큰 위협 간주 北이 간첩을 보내 공작해도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만큼 김정일이 할 일을 해냈다”라고 비꼬았다는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문 구독의 자유 등은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중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려는 것이겠습니까.
  사립학교법 개정은 또 무엇입니까. 사립학교 존재이유는 각 학교가 갖는 설립 취지 혹은 설립이념이겠습니다. 종교재단 설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들 특히 고등교육 기관들의 절대다수가 사립학교이고 그 중에서도 종교재단들이 운영하는 학교들이 가히 절대다수라 할 수 있는데 이사진을 어째라 저째라 운영을 어째라 저째라 국회에서 좌경한 386세대 특히 전 교조들의 구미에 맞게 입법하려 한다니 도대체 인간교육이 무엇인지나 알고나하는 것입니까. 이런 면에서 가장 앞질러가고 또 가장 큰 성과를 거두는 미국에서 국가가 종교재단 학교들에 대해 의회에서 이사진과 운영을 그렇게 법제화하든가요. 인간학의 기초지식조차 갖지못한 386세대 중심의 여당이 이런 사립학교법 개정을 강행한다면 앞으로 사립학교 재단 특히 종교재단들의 무서운 저행에 부딪혀 혼란의 혼란만을 거듭할 것입니다.
  이제 과거사 규명법에 대해서도 한 말씀 곁들여야 하겠습니다. 민족사관을 운위하는데 다시 말해 지금 386세대가 갖고 있는 지식으로 민족사관(民族史觀)을 운위하는데 민족사관 정립을 아무나 하는 것이겠습니까. 1945년 해방 후부터의 과거사를 거론한다면 가장 큰 문제가 북한의 공산 정권수립을 민족사관적으로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가 문제이겠고 특히 이 민족사에 일찍이 없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른바 5천년 민족사에 있어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되어 여당이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 효과 때문에 자폭적인 참사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복잡다단하고 지금으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정확히 정립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다. 먼 훗날 많은 역사 학자들의 피나는 연구 결과로서만 이 시기의 민족사관을 정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간 중의 친미, 친북 행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많은 연구와 고증, 시대적 역사 흐름들을 깊이 있게 또 객관적으로 학문적으로 조명하지 않고서는 단편적이고 편파적, 심하면 정치적 편법으로 정리되어 상훈·처벌 등이 이루어질 위험이 큽니다. 참으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고서 친일과 항일을 사실에 입각 규정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의 역사 연구는 외부적이며 집단적 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각 개인의 인권과 자유, 행복권 등에 근거한 공동체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식이 짧고 집단적 힘만을 능사로 하는 386세대 중심의 여당이 이런 문제를 제기할 입장에 있느냐는 의문도 꼬리를 물것입니다. 이 문제는 자칫 스스로 역사의 심판대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회주의적 시각에서의 민족사관 정립은 후대의 진지한 역사학적 관점에서 다시 크나큰 시행착오적 오류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전 시기인 일제시의 친일사 정리문제에 있어서도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조상들의 잘못된 정치로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온 민족이 강점된 일제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일제통치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런 선대들의 대를 이어 오늘의 우리가 삶을 받고 독립하고 번영한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 문제와 접촉해야 것입니다. 물론 악질적 친일분자들이 있었으니 그런 사람들은 경우 경우를 따라 처벌하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 일제에서의 해방이 근 60년이어서 거의 다 타계했으니 정확한 자료를 얻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민생고가 극한에 달한 이 시점에서 그런 문제에 국력을 쏟아 분열시키는 것이 우선과제이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또 이런 문제는 386세대 중심의 현 정권과 여당의 능력으로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는 것도 큰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급조된 요원 수백명이 전국을 누빌 것이라는 후문도 파다하니 중국에서 있은 홍의병식이라느니 말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집안이 집안인지라 사업 특히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 겉으로는 이른바 모범적인 일본 신민인 것 같으면서도 뒤로는 중국의 우리 임시정부에 돈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때 저는 어려서 그런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만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친일의 옥석을 가리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강압적으로 입법을 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친일의 민족사관에 대해 말한다면 저는 요즘 정치지향적 386세대보다는 할 말이 훨씬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저의 집안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쇠락(衰落)한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백부(伯父)님은 혈기왕성한 독립운동 청년으로서 105인사건과 신민회사건에 연류되어 경성통감부에 이송 혹심한 고문으로 29세의 건장한 청년이 3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 그 시신을 인수받은 저의 아버님의 말씀은 머리끝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고문의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가세는 그 후 급격히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춘원 이광수(이 분은 말년에 친일분자로 배신자라는 평도 있습니다)선생 등과 그 후배 민족사상가들이 오산학교에 운집하였기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민족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친일분자들에 대해 남다른 아픔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 여당과 정부가 하려는 식의 과거사 청산에는 반대 입장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인들의 단견이고 참된 역사와 양국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선린협력단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인류사의 운명을 지고 있기에 좀 더 깊은 학문의 연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부와 여당은 고구려사와 발해사, 간도사 등에 대한 뿌리찾기에는 입도 열지 못하면서 과거사 정립이라는 명분으로 국내 사람들만을 들볶는 인상을 준다면 참으로 안된 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저의 체험 일단을 여기 소개해봅니다. 저는 1976년 일본 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 도쿄본부로부터 초청을 받아 도쿄대학 당시의 총장 하야시겐따로(林健太郞) 교수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본 박물관에 표기된 당(唐)에서부터의 문물의 일본 유입에대해 강한 의심과 반론을 교류기금본부에 제기한 바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연유인지 동경대학 총장 방문은 상당한 우대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아까몽(赤門一도쿄대정문, 일본문화의 정화(精華)라는 아까몽)을 들어섰을 때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국빈이나 맞이하는 듯 검은 양복과 흰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젊은이들이 2열로 군데군데 도열 총장의 귀빈접대저택까지 도열해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안내해 갈 사람은 제가 찾아올 분의 선발자 정도로 아는가 싶었습니다. 약속된 면회할 분이 곧 오시느냐기에 그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스코트해온 차를 정문에서 돌려보내고 단신으로 부슬비가 내리기에 우산 펴들고 들어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간 무슨 국빈인사 맞이하는 듯이 도열한 일인들 사이를 지나 이른바 총리급이상 국빈만 맞는다는 일본식 야시끼(邸)에 들어섰습니다. 마당은 아름답게 꾸민 일본정원이었습니다. 집안은 검소하면서도 편안하고 기분 좋은 일본식이었는데 서양식 탁자들이 놓여있었습니다. 하야시 총장은 사학자였습니다. 자연 한·일의 역사적 문제로 이야기는 옮겨졌습니다. 일본문화의 기원점에 대해 저는 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대담은 진지해졌고 약속시간은 30분이었는데 하야시 총장님은 비서에게 지시, 다음 약속시간들을 연기시켜 12시 점심때까지 대담은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배상이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자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또 그분은 사학자로서 학자다운 기풍을 지녔기에 진지하게 이야기가 진전되었습니다. 급기야 그분은 저의 신분 즉 일본 식민지 시대의 희생가문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미안해하며 자기는 일본 군부정치시대 자유주의자로서 감옥에 있었다는 말씀을 하며 전쟁이 더 연장되었더라면 군부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고 하며 군부정치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입장은 그런 것은 일본인들 내부의 문제이고 식민지 피해자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즉 도쿄대학은 옛(동숭동) 경성제국대학의 어미 비슷하게 크고 경성제국대학(구 동숭로 서울대학)은 그 지체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총장님은 두뇌가 명석하였기 때문에 식민지 특히 한국(그 당시 조선)에서 무자비하게 착취한 막대한 재력으로 이룩된 세계 굴지의 도쿄제국대학에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공부하고 그 대학의 총장까지 된 것이라는 점을 말했더니 그 분은 그 직석에서 나의 견해를 다 수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분은 도쿄대학의 일본사 연구소 야마다(山田)소장에 전화로 저를 만나도록 지시했습니다. 12시가 다되었을 때 그 분은 예정에도 없었던 점심을 제의하며 가구시인(學士院) 식당으로 저를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사원(學士院)이면 우리로 쳐서 대학4년 졸업한 대학원생정도의 식당인가 하며 따라갔더니 그 식당은 우리로 치면 아카데미 즉 한림원학자들이 식사하는 특이한 식당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동경대학운영의 최고급 인사들과 같이 질 좋은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경으로 생각되는데 위에서 말한 야마다 소장을 만났습니다. 벌써 그 분은 일본사(日本史)라는 큰 책을 5-6권 갖다놓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는 일제 시 경성(서울) 경복궁 근처에서 태어나 경복궁 담을 쓰다듬으며 소년시절을 보냈고 경성제국대학에서(조교수인가로) 강의까지 하다가 일본패전으로 도쿄에 와 도쿄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데 일본사 연구소장겸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갖다놓은 일본사는 메이지(明治) 유신 후 그 놀라운 사건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교수 두 사람이 시작한 것인데 1백년 이상이 지나는 동안 5백권의 일본사를 발행했으며 앞으로도 7백권분의 계획이 되어있어 대물림으로 연구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2차 대전 중에는 미군 폭격으로 전국이 초토화되어 갔기 때문에 그 원고 뭉치와 특히 그 당시는 필름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약칠로 필름 노릇을 해준 유리판들을 들고 산간지대로 소개하며 생명을 걸고 자료들을 지켜왔다는 자랑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 내 어디에 있든지 심지어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라 할지라도 자기들은 다 입수하여 그 대단한 일본사를 편찬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놀라운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료를 특히 식민지시대와 제 2차대전 중의 자료들은 하고 물었더니 자료는 일본국내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컨대 관보, 신문, 전쟁 중에는 대본영(大本營一군부)발표 등이 그 주요소스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자료의 허점과 허구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식민지 시기의 관보나 전쟁 중 대본영 발표는 거짓에 찬 것이어서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이런 자료에서 기본적인 방대한 일본사가 쓰여지고 그것을 토대로 중·고교 역사 교과서와 온갖 역사서들이 기술된다면 일본의 다음 세대는 자신들이 가해자인데도 피해자로 생각하게 되어 또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것과 역사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일본 내 자료들만으로 안 되고 주변국가 특히 침략이나 식민지의 피해를 입은 현지의 실정과 역사를 연구해 학문적으로 기록하여야 한다고 했더니 야마다 소장은 원래 서울에서 나고 자라나 한국사람을 센진(鮮人)이라고 얕본 세대인지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론에 직면한 일본국제교류측은 이런 관점에서 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일본 국내 학자들을 물색 결국 오사카 대학의 문학 부장 우메다니(梅溪)교수를 찾아내 나를 그곳으로 급하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우메다니 교수는 오사카대학의 총장이 되었다는 후문이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그 분을 오사카 대학에서 만났는데 도쿄에서 급하게 연락을 받고 그 날 회의를 다 취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일본역사에 대해 고압적인 식민지사관을 완전히 벗어난 학자로서 일본 군부시대에는 여러 가지 고통도 받은 학자인지라 저의 물음에 거침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일본 문화 혹은 일본 정신의 정착은 어디서 시작됐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연구로는 신라 혹은 백제 혹은 고구려에서 문화인들이 온데서 시작됐다고 보는데 자기 생각으로는 백제에서 온 것 같다며 그들이 정치적 망명으로 왔는지 침략자로 왔는지 혹은 일본의 당시 토착민들이 모셔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런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한국말에 ‘무리’라는 말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있다고 하며 그 말은 본래 짐승들에게 쓴다고 했더니 조선 반도에서 건너온 문화인들이 그 때 문화 없이 사는 토착민들을 보고 ‘무리’라고 한 것이 발음상 ‘무라’(村)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선반도에서 온 문화인들이 그 토착민들에게 농업도 가르치고 글도 가르쳐주었던 것이었으며 일본어의 무라(村)에서 즉 집단적 정착촌에서 일본정신 혹은 일본문화가 시작됐다고 그 교수는 언어적 접근법을 썼습니다. 이런 식의 일본문화관이었기 때문에 식민지적 문화에 젖어있는 당시 일본 선임학자들에게 좋지않게 보여 교수직에서 쫓겨날 뻔했는데 학생들의 항의 데모로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만날 때는 아무도 건들일 수 없는 일가견의 학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이제 문제는 다 끝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니고 학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의 진실을 드러냈으면 됐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즉 저는 앞으로 양국 간의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 즉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고 미래 지향적인 우호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자리 떴습니다. 이런 과정들에서 저는 인종학적이며 과학적 검증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곤 했습니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귀국 약 2개월 후 일본 나가시기 의과대학에서 한국 쪽을 향하는 일본의 관서지방과 북해도 쪽을 향하는 관동지방 주민의 몽고반점을 조사했는데 관서지방 인구는 85%가량이 몽고반점을 갖고 있었고 관동지방 사람들은 85%정도가 몽고반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학적 조사결과가 발표되어 한반도에 가까운 지방으로는 한국인들이 건너갔으며 문화를 전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었습니다. 근일 국회에서 친일 과거사를 규명한다니 우리는 이제 내년이면 해방 60주년이어서 그 때 친일한 사람들이 거의 다 사망해 없어졌는데도 죽겠다고 아우성인 민생고는 외면하고 시급하지도 않은 문제, 역사학자들에게 맡기면 될 문제를 저렇게 야단들이니, 지울 수 없는 원한이 있어야 할 나 같은 사람도 아닌 그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천지개벽이나 하는 듯 야단들이니 정말 착잡한 심경입니다.
그런데 친일부분에 대한 역사바로잡기를 한다면 생명을 걸고 반공의 전쟁을 치르며 피흘려 지켜 땀으로 쌓아올린 6.25이후의 이 땅의 역사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86세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공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86세대도 또 그 아래도 이런 선대들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국력과 경제적 바탕위에서 교육받았으며 오늘의 자유와 풍요 속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입니다. 1950년대 국민소득 80달러의 세계최빈국에서 1만 달러를 넘는 국가를 그들의 피땀이 이루어 놓았습니다. 그 터전에서 국가의 미래가 구상되고 경제대국 10위를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 현대세계에서 경제력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 더해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얼마 전에 지금 아주 좋은 직장으로 칠 수 있는 386세대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으며 국회 과거사 규명법안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이 뇌리에 맴돕니다. 자기또래 4인이 터놓고 이야기해보니 2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은 친일이었고 또 다른 2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은 친공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글쎄 노골적으로 친일하여 민족에 또는 일반 사람들에게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입힌 사람들이 드러나 오늘에 굉장한 지장이 된다면 경우 경우에 따라 색출·처벌할 수 있는 일이겠으나 당장 파산, 실직, 민생고, 자살들이 잇달아 일어나는 판국에서 친일 진상 따위로 정국이 야단법석이고 국론분열이 가중된다면 그런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오늘의 정치인들이 맞느냐는 경멸의 말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의 문제를 짚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신문부수를 조정하려 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는 아니고 편협한 사회주의 혹 독재의 수법이겠습니다. 신문구독은 독자들의 자유의사에 달린 것이지 정부여당이 규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신문 구독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중의 기본권입니다. 그런데도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주요 신문들의 부수를 줄이겠다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조선·동아 두 주요 신문들의 구독자가 4백만 가량 되는듯한데 또 신문 한 부를 보통 2~3명이 읽는다고 볼 때 조선·동아는 8백만 내지 1천만 명이 읽는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독자들은 다 형편없는 오보나 왜곡된 기사들을 읽는다는 말이 되니 이 얼마나 독자들에 대한 모독입니까. 그것도 KBS와 같은 여권편중매체가 서구선진국에서는 법으로 신문구독제한의 예가 있다고 예증한 것이 허위로 드러났다는 보도들이니 그 얼마나 조작적인 행태입니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신문부수를 줄게 하거나 특정 신문들이 정부여당에 쩔쩔매게하여 독자들이 외면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부·여당측 인사들과 그 정책들이 신문들의 논조나 기사를 훨씬 능가하는 때입니다. 예컨대 W.처칠, Ch.드골, K.아데나워, J.F.케네디, T.마가렛트 수상 등의 예입니다. 유치한 발상, 다 지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정치이념 내지 정책으로는, 또 그런 식의 국회 법제정으로는 지금이 어떤 때라고, 결과는 부메랑 효과만이 있을 뿐 세상의 웃음거리 내지는 멀지 않은 후일의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겠습니다. 정권이 지금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TV나 신문들에게는 호의적인 2중적 작태는 절대 금물입니다. 그렇다고 주요 신문들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요 신문들 또한 반성할 점과 쇄신을 해야 할 점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신문은 공기(公器)중에 공기입니다. 주요 신문들이 너무 상업성에 치우치면 안됩니다. 세습의 시대도 지났습니다. 세계의 주요 신문들처럼 말씀입니다. 이제 한국의 주요 신문들도 지난날의 과오들에 대한 자진참회의 정을 국민들 앞에서 보여야 할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주요 신문들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하기 위한 창업자들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작금의 이 땅의 NGO의 문제는 저에게 무엇보다도 더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지난 약10년 간 저는 민간정부라 하더라도 전의 권위주의 시대와 별 다른 것이 없어 NGO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NGO들의 활동 또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마침내 정부의 금전적 후원을 받으며 총선에서 야당의 낙선운동을 했다니 참으로 실망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하나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한 것은 NGO에 건전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명 여중생의 미군 훈련탱크의 압사사건으로 일어난 젊은이들의 촛불시위는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거대한 반미시위로 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들과 젊은이들이 민족 공조, 자주 국방을 외치니 미국은 미군 감축을 신속하게 결정 실현하고 있답니다. 그 공백을 매우기 위해 우리는 천문학적 경제적 부담을 져야 한답니다. 무슨 돈으로? 국민은 허리가 휘고 등꼴이 빠져야 할 판입니다. 이라크 파병은 미, 영 다음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내면서도 시기를 놓치고 방법이 서툴러 국가의 큰 손해를 보는 형국이랍니다. 국민에게 혈세만 가중시키는 정부가 되었습니다. 미군의 후원이 없으면 북의 남침 후 16일이면 서울이 함락될 위기랍니다. 이런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국회위원이 알렸다고 국회는 온통 소동이며 그런 알림은 간첩행위랍니다. 이런 위기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몰아넣은 현 정부와 여당은 책임질 생각은 않고 국민의 눈을 가리거나 속이는 데만 혈안인 듯 싶습니다. 국민은 불안합니다. 이 정부 들어 국민의 불안은 날로 가중됩니다. 마음 편한 날이 하루도 없는 상 싶습니다. 이제사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미군 1만 2천여명 감축의 3년 유예를 얻어내 그나마 국민들의 불안의 일말을 진정시켰고 경제적 큰 부담도 덜게되어 어느 정도 숨통을 티어 준 셈입니다. 그것은 미국 고위 당국자와의 정동영통일원장관의 지난번 방미중의 외교의 결과라고 하니 다행입니다. 우리는 국제정세의 무지와 무능으로 결국 파병 등 희생은 희생대로 치르면서 국토 안보에 위기를 조성 국민들의 불안과 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이웃 일본의 처사는 역시 감탄스럽습니다. 미군은 한명도 감축않고 미국의 중요관심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 일본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미군의 강력한 군과 핵우산의 보호 속에 최대로 국익을 신장 할 뿐만 아니라 UN의 상임이사국까지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없이야 말이나 꺼낼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한반도는 북한의 핵 개발 핵 보유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핵 보유는 세계의 양식(良識)이 허용치 않습니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여의치 않을 경우 북폭설을 흘리곤 합니다. 미국 선거결과가 어찌되든 북핵문제를 끝까지 몰고 가 현 부시 대통령의 부친 부시 대통령 때 미국의 한반도 내 핵 철수에 상응하는 북핵 완전철거 즉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야말 태세입니다. 이것은 또한 세계 양식의 강력한 요청입니다. 한국의 어정쩡한 태도는 결국 한국을 국제적 외톨이로 만들 위험이 크다는 주변국들의 경고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정부는 정식으로 한·미 동맹관계의 이상을 걱정하는 입장을 한국정부에 표명했다고 하고 독일대사는 국제적 외톨이 신세가 되는 한국외교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며 한국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답니다. 근일 중국은 북한편에 서서 탈북자 60여명을 대거 검거했다는 보도입니다. 그런데도 권력핵심의 386세대는 미국보다는 중국을 우선시킨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정부는 평양과 중국의 눈치만 보는 형편이랍니다. 러시아는 어차피 미·일의 북진을 견제해야 할 입장이니 결국 북한측에 힘을 실어 줄 것입니다. 미·일은 중·러의 태평양으로의 남진을 저지하기위해 더욱 견고한 유대를 유지할 것인데 한국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형국이며 북한조차도 대수롭게 여겨주지 않은 입장이니 그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겠습니까. 대원군일파의 무지와 실력 없는 자주, 배짱, 쇄국정책은 이 땅과 그 주변을 러·일전쟁, 청·일전쟁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몰아넣었었고 결국 한일합방(1910)으로 한국을 35년간의 일본식민지로 내준 천추의 민족한을 남겼습니다. 세계사의 큰 흐름와중에 있는 한국이 민족 공조 정도의 좁은 정책으로 국운을 열어가기에는 애당초 유치한 전략입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세계의 큰 흐름을 타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또 모든 방면에서 국제적 국력을 키울 때 민족공조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원군 쇄국시대의 한국 젊은이들의 개화파는 세계에 열린 조국을 생각했는데 지금의 386세대 정치인들은 폐쇄적인 것 같아 앞날의 국운이 몹시 우려됩니다.
  통일문제도 그렇습니다. 통일은 저와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누구보다도 절실한 염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1980년대 후반 남북관계가 너무 경화, 상호 폐쇄적이 되었을 때 저는 어떤 투고에서 빈차라도 좋으니 공기만이라도 싣고 서울 혹은 부산에서 평양 혹은 신의주까지 또 평양 혹은 신의주에서 서울 혹은 부산까지 왕래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기차는 왕래하지 못하지만 그 후 그래도 사람들의 왕래는 제한적으로나마 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로 생각합니다. 통일은 지금 곧 되어도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양쪽이 서로 다른 체제에 살았고 더 나아가서는 사고와 생활 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체제와 사회주의 통제체제가 너무 다르고 경제적 차이도 너무 크니 통일은 먼 훗날로 미루고 그 전 단계로서 오랜 기간이 걸릴지라도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며 서로의 삶의 이해와 인정(人情)을 깊이며 신뢰를 쌓아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는 것이 순리이고 바람직스럽다는 것을 저는 1990년 유럽에서의 통독이후 줄곧 말해왔던 것입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해야 할일은 양쪽의 이산가족들의 상호 고향 방문이며 친척들의 고향에서의 상봉이고 조상들의 묘(墓) 참배이겠습니다. 이것은 극히 인간적이며 인간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의 신뢰를 쌓는데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며 북쪽에 자연스럽게 많은 돈이 유입되는 길이겠습니다. 1천만 이산가족 중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아직 수백만이 남아있고 가신분 들의 자녀들도 이산의 한을 품고 있으며 적지 않은 경제력을 갖고 있으니 부모 간 혹은 형제간의 고향길 교류가 트이면 상당한 경제력이 북쪽으로 유입될 것입니다. 이런 유입은 북한 곳곳의 경제적 부흥에 큰 도움과 기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1980년대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기회있을 때마다 많은 말을 하여온 것입니다. 통일문제, 북한문제를 논함에 있어 지금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와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명권과 인권문제는 인간의 어떤 문제보다도 앞서가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기본권입니다. 이것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자체이기를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양식(良識)은 이 점에 가장 큰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인권과 민주를 내세워 군사독재와 싸웠다는 권력중심부의 386세대가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모르는 체 눈감고 함구한다면 그 모순성과 이중성은 가증스러운 것이겠습니다. 다른 변명들은 위선의 변일 뿐입니다.
  요즘은 또 정부 기관들의 낙하산 인사설로 언론이 분분합니다. 이것 또한 이승만 정권과 특히 군사정권시대의 전매특허였으며 그 후 정권들에도 이어진 폐습이었습니다. 이런 폐습이 개혁을 외치면서 독야청청 풍의 현 정권에서도 급류를 탄다는 보도들입니다. 또 요즘은 대학입시에 있어서 고등학교 등급제와 내신과 대학의 입시본고사가 큰 문제로 사회와 국회에서 논란되고 있습니다. 이문제야말로 원칙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교육은 인간이 타고난 성품과 능력계발을 위해해야 하는 것인데 인간의 타고난 성품과 능력들은 꼭 같은 것 즉 평등한 것이 아니고 천차만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였습니다. 획일적인 인간이 아니고 천차만별의 다양성으로 하느님은 자신의 무한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당신의 모습인 인간창조에서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다양성을 훌륭하게 키워가는 것이 교육입니다. 따라서 교육의 평준화 더 나아가서는 하향 평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천차만별하게 타고난 재능과 가지가지의 능력을 교육을 통해 발전시키고 그렇게 함양된 인간성과 능력으로 인간 삶을 조화시켜 공동체 안에서 인간들이 다같이 행복하게 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원칙을 견지하고 파생되는 부작용을 극복해가야 할 것입니다. 임시방편으로 원칙을 희생시키고 부작용을 없애는 데만 급급하여 모든 교육을 하향평준화하면 오늘과 같이 모든 면에서 영재교육에 혈안이 되어있는 세계 속에서 한국의 젊은이들과 국력은 도퇴 내지 파산의 운명을 맞을 것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 억지로 교육부나 국회가 법을 제정해 보았댔자 피교육 당사자들은 그런 룰을 짓밟을 것이며 예상도 못했고, 해결도 할 수 없는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어서 교육을 파탄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정치권력으로 구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언이 폐지하고 이런 일그러진 교육 제도하에서 아무리 386세대라 할지라도 끝까지 무지로 일관하지 않는 한 자기의 아들, 딸들을 교육시키고 싶으겠느냐를 묻고 싶습니다. 이제 386세대도 40을 훌쩍 넘어 곧 50대로 접어들 것이어서 앞으로 20년 내지 30년 혹은 40년 후에 완전히 세계화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자기들의 자녀들을, 노무현대통령 자신부터 자기는 외국에 간 일이 없다고 자랑하였고, 386세대는 미국보다는 중국을 우선시켜야 한다느니 한 오늘의 386세대가 그런 지식으로 사학법 개정을 고집해야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이 정권초기부터 제기해왔습니다. 이 사립학교 개정법에 대해서 천주교 주교단과 평신도 협의회가 타종교들과 연합하여 끝까지 하느님의 창조이념에 거역하는 ‘열린 우리당’ 개혁 법안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반대 ‘헌재’소송까지도 불사할 것이니 신자의 양심을 가진 국회위원이라면 여야를 떠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신자 양심을 버리고 정권의 눈치만 보거나 아부형이면 하느님 앞에서 신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정부에서 시종일관 열병처럼 열을 올리는 언론개혁법에 대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주요 신문들은 파업 등과 관련 정부에도 큰 도움이 된 면도 여기에 부연하겠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의 권력과 언론의 상극관계와 상호관계 즉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양자가 혈투까지 감행하는 현상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고 정권이 끝난 후 그 실상도 잘 드러나는 것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노무현 정권의 경우는 또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정권이 젊은이들과 노동계에 절대적 후원으로 창출됐는데도 실제 정치를 맡고보니 출발 초부터 이익단체들의 후진성에 젖어있는 노동계의 총반란 앞에 속수무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노무현 정권 초기의 두산중공업, 철도노사, 화물연대 등의 총파업과 맹렬시위였으며 현대자동차의 노조투쟁에는 정부의 일방적 투항이었다고들 했습니다.
  노동파업은 하투(夏鬪)에서 추투(秋鬪)로 연장되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은행조조 강경파업, 지난 7월에는 전국 지하철 노조파업이 열기를 뿜다 스스로 물러나는 형국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와중에서 정부는 그 태생적 한계로 거의 속수무책이었으나 정부가 그렇게도 천추의 한이 있는 양, 또 개혁의 제1호인양 압박해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같은 주요 신문들의 정곡을 찌르는 사설들과 전문가들과 국가원로 인사들의 논설들과 말씀들로 인해 형성된 국민 여론과 압력으로 파국이 수습되곤 하였습니다. 아이러니 치고도 보통 아이러니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정부가 계속 옥죄여가는 주요 신문들이 정부를 위기상황에서 구출하곤 한 셈이었습니다. 또 정치권력 지향적 386세대들이 주축이 된 현 정권과 여당은 권력으로 법제정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 정권에 거추장스러운 주요 신문들을 법으로 묶어 그 부수도 확 줄이고 영향력을 무력화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사로잡힌 신문 압살 정책을 쓴 것이 이승만 독재정권이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이었고 그 아류로 태어난 전두환 정권, 노태우정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문민정권이라는 김영삼 정권말기와 국민의 정권이라던 김대중 정권 말기도 유형은 다르지만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권이 독선, 독재화되고 언론탄압 혹은 언론과의 불협화음이 크면 큰 만큼 그 정도에 따라 그런 정책들은 부메랑 효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해방 후 나타난 정권들치고 개혁, 혁신, 쇄신, 부정부패 일소, 정의구현 등의 구호를 내걸지 않았던 정권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 강조의 정도여하에 따라 그 만큼 역대정권들은 다 실패한 정권들이 되었고 심하게는 비참한 운명을 맞기도 했던 것입니다.
  제발 현 정권 핵심부는 이 점에 특히 유의해주기 바랍니다. 현 정권은 천하의 개혁은 다 자기들이 하는 것처럼 소리가 요란한데 빈달구지의 소리가 더 요란하다는 통속적 속담에 귀 기울임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러기에 근자에 이르러 학회 등을 통해 한국 최고 지성들 중에서는 그런 개혁을 포장된 폭력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 386세대중심의 노정권과 여당을 반지성적, 감성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반지성적, 감성적 흐름은 결국 합리적이기보다는 권력과 야합할 때 강압적, 폭력적이 되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마도 고육지책인 듯한데 1930년대의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수습하여 오늘의 미국을 경제 대번영으로 이끈 뉴딜정책을 이 땅에 실현코자 하는 발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뉴딜 정책의 핵심에는 우리네와 같이 사립학교법 개정, 신문법개정, 보안법 철폐, 과거사규명 등등 대다수 국민정서에는 맞지도 않고 학문적 뒷받침도 없는 행정위주의 얍삭한 정책들이 아니라 경제공황에 가장 기본이 되는 새로운 노동법이 깊은 학문적, 현실적 배경을 갖고 미래지향적 깊은 통찰을 겸한 학자들에 의해 입법되었기에 성공했던 것임을 이 정권은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소련에서는 공산당 지휘 하에 노동자, 농민위주의 경제정책이 세계에 새로운 태양처럼 비쳐질 때였지만 미국은 크리스천 정신에 의해 그 대공황 속에서도 소련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펴 소련은 경제적 파탄과 동시에 지구상에서 살아져갔고 그 위성국도 다 간 곳 없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중국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길을 택할 수밖에 달리 번영의 길이 없게 된 것인데 국민들의 좌경과 무지의 집단이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는 이 정권이 과연 미국식 뉴딜 정책에 준하는 성공을 할 수 있을가의 근본적인 의문부터 제기됩니다. 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들은 풍월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말이 아닐까 싶어 기대에 앞서 또 무슨 국세낭비와 용두사미 내지는 더 큰 혼란을 조장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그렇다고 별로 지식도 없는 386세대가 지휘하는 무슨무슨 위원회를 만든다고 기대할 만한 학자들과 연구성과를 바랄 수 있을까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실 뉴딜 정책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당시 새롭게 제기된 노동문제, 임금문제, 실직문제, 노사문제, 국가문제 등을 깊은 인간성에 근거하여 정리해낸 세계에 아주 새로운 노동법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 법을 위촉한 사람들은 그 방면에 새로운 기운으로 떠오른 두 젊은 성직자 학자였습니다. 그 한 분은 워싱톤 가톨릭 대학교수였으며 필생을 학문연구와 사회활동에 관한 연구에 몸 바친 윤리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라이언 교수였고 또 한분은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한 성직자였는데 라이언교수가 주도하였습니다. 라이언교수는 당시로서는 사회 정치문제에 있어 아주 새로운 비지온이었던 교황 레오13세의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교서에 근거하여 그 노동법, 미국역사에 길이 빛날 노동법을 제정하였던 것입니다. 이 교황 회칙은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었는데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상과 모든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의 생명권과 기본적 인권에 근거한 노동법이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 성격을 띤 것이었으며 그 노동법은 그 때의 경제공황을 수습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또 내일의 미국을 번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필생을 바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학자들 그리고 깊은 인간성에 바탕한 입법을 골격으로 한 뉴딜정책은 말 하기는 쉽지만 이 땅에 펼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대학시절, 한창 학문적 기초를 쌓아야 할 학창시절을 데모로 해가지고 뜬 사람들, 그 후로도 별로 공부하지 않은 386세대들의 조정 하에 미국과 같은 뉴딜정책이 펼쳐질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대통령은 이제 핵심적 진영을 바꾸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 그 정책이 위헌 결정을 받은 대통령, 혼란의 혼란을 거듭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런 말은 노무현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니 어쨌든 잘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것은 국민이 잘 살게되야 대통령이 잘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은 사나운 말과 같아서 온순하고 말 탄 사람, 기수에게 순종, 절대 충성인 것 같다가도 이게 아니라고, 틀렸다고 느끼는 순간 사나운 말로 돌변해 탄 사람을 사정없이 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 더 부연한다면 노무현 정권이 내건 개혁은 그리 인기 있는 용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대정권에서 이런 낱말이 계속 반복되었으나 결국 그런 표어는 권력과 금력을 쥔 전 사람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층이 그런 자리들을 차지하는 것 밖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은 수 없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실은 노정권의 개혁은 그 내용이 아무것도 다듬어진 것이 없는 거치른 소재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개혁인지 혁명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주 혁명이면 헌법정지, 국회해산, 형명령(令) 또는 포고령 1,2,3호 등으로 옛것을 다 청산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게 되는 선명성을 띠게 되는데 개혁이라 함은 기존해 있는 헌법을 준수함을 전제로 국회를 인정하고 이런 제도위에서 성립된 정부조직과 제반 사항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선(改善)의 입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개선은 있는 것을 전제로 즉 있는 것을 존중하고 잘못된 부분을 서서히 바로잡아가는 것입니다. 국가의 명운이 좌우되는 것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부는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상당히 영리한 분으로 보이는데도 또 법조인이었는데도 입장이 어려워질 때는 기존의 제도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헌법재판소의 제재를 받는가하면 국보법 폐지문제에 있어도 법이론 이전에 그것은 악법이니 폐지되어야 한다는 등의 논리를 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대립하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현 헌법에 의해 선출된 현직 대통령이 그것도 헌법을 준수하여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현 헌법에 기초하여 조직된 권위 있는 기관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습니다. 이럴 바에는 혁명이었으면 선명했을 것을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또 노무현대통령은 국회통과법의 헌재소를 헌재가 계속 위헌판결 한다면 헌정문란으로 몰아붙이려는데 이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헌재는 헌법 해석의 권위있는 최고기관이기 때문에 아무리 국회라 해도 잘못 입법하면 그때마다 위헌판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시대 우리사회에 있어 혁명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소련의 공산혁명, 중국의 홍의병의 문화혁명 후 혁명이란 구호는 오늘의 인류문화선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보수는 악이고 진보는 선이라고 하는 논리를 펴는 것은 참 듣기에도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더욱 지금 적지 않게 염려스러운 것은 이른바 386세대를 중심으로 ‘수구’니 ‘꼴통’이니 ‘냉전시대 유물’이니 등으로 몰아붙여 전 세대를 매장하려는 듯한 경향입니다. 이런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공산사회나 극좌사회주의사회 혹은 백색 독재정권이나 그런류에 종속되는 사회에서 ‘반동’, ‘자본주의 주구’, ‘반국가’, ‘반국민’ ‘반혁명’, ‘반개혁’ 등등으로 나타나는 행태와 어딘지 모르게 유사성을 풍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수구’라고 몰아붙이는 정치권력 지향적 386세대야말로 오늘에 이르러서는 ‘수구 중 수구’라는 표현이 적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사조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수십년 앞서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국제 사상계에서는 탈식민주의 혹은 식민주의 후기(postcolonianism)를 깊이있게 논하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인류공동으로 모색하는 시기이지 몰아치기와 분열, 선동의 작태는 극히 후진적인 것이며 특히 무고하고 순진한 젊은 층을 선동적 시위로 몰아가거나 젊은이들 자신들 스스로가 그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극히 후진적인 것이고 반 인간적어서 젊은이들의 인격적 가치를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는 이제 몰아붙여서 고칠 수 있는 식의 어린 사회가 아닙니다. 저간의 정부들의 개혁, 쇄신, 정화 등등의 표어들이 계속 실패하는 중에서도 한국이 세계의 경이 속에 발전을 거듭한 것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계의 각 분야로 뛰어 든 패기와 진취성의 덕분이었습니다. 개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나 그것은 큰 나무를 바로 잡듯  받침목들과 버팀목들을 세워 오랜 세월에 걸쳐 바로 잡아야지 성급하게 하다가는 부러지거나 받침목들과 버팀목들이 튕겨나가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의 향배입니다. 지금과 같이 국민의 큰 부분이 계속 정부개혁정책에 반대하고 있다면 또 민주국가라면 정부가 민의를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큰 권력이 현 대통령과 여당에 쥐어져가다가는 폭언까지 일삼는 안하무인격인 때가 비일비재한데 권력은 예리한 검과 같아서 그것을 쓰는데 훈련되지 않은 자에게 쥐어져 휘두르면 많은 사람을 다칠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크나큰 자해(自害)를 가하게 된다는 것을 현 집권층은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에 걸쳐 작성된 이 원고를 마감하려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세계 경제포럼(WEF)의 한국경제 추락발표였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주요 일간 신문들이 경제 동향의 심각성을 말할 때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신문들이 부풀린 음해성이라고 몰아붙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제의 세계적 권위기관은 우리네 신문들이 보도한 것보다 한국 경제의 추락상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지난해 18위에서 올해에는 29위로 11단계나 한 해 동안에 떨어졌다는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그 주요 내역을 보면 더 경악스럽습니다. 93개국 중 우리나라는 노사협력에서 92위, 말하자면 꼴찌이고 정치인 신뢰도는 85위입니다. 결국 이 정부의 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 성적표입니다. 이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서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갑자기 신 귀족 계급이 되었다는 386세대가 핵심인 현 정권은 이런 현실은 외면하면서 지난날의 역사진상규명이니 한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국보법폐지니 좌경 적색인사들의 포상정책이니, 신문법개정이니, 사학법제정이니 등에 있는 힘을 다 쏟는 것 같아 현 정권과 여당은 국민들의 호된 비난을 면할 길 없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지난 근2년간의 실정(失政)과 경제토단의 근원을 나름대로 구명해봅니다. 그 근본 원인은 두 말 할 것이 이 정권과 여당 핵심의 정치권력 지향적 386세대의 의식문제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다 지나간 그들의, 번영하는 인류사회의 어디에도 없는 좌경적 이념입니다. 물론 그 세대들의 공적이 큰 면도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은 광주사태 등을 몸으로 받아내며 군사정권을 종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국내외의 예체능,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들이 속출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조건하에서입니다. 대학시절에도 분초를 아껴가며 공부를 계속한 사람들에 한해 그렇습니다.
  저는 근 45년간에 걸친 대학 강단에서 특히 1980년대 중·하반기 학생들의 데모가 극에 달했을 때에도 학생은 그 1차적 임무가 면학이란 점을 강조, 데모는 하되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수 없이 반복 강조했습니다. 결국은 실력의 문제이고 그런 실력은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실력이어야 한다는 점과 그 때 당시도 도서관에서 불 밝히는 학생들이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정치권력지향적인 386세대가 지금 권력핵심부에 포진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386세대는 학생시절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고 데모에만 전력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는 그들이 국가의 큰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국가는 구한말기보다 더 어려운 국난을 맞게되니 이 땅은 혼란을 거듭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무지와 만용, 권력욕의 소산입니다. 또한 그 때 다는 아닐지라도 소위 지도급이라는 간부학생들이 자기들의 목적달성을 위해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것도 보았고 체험했습니다.
  제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오늘 여당과 정부정책 수립 핵심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때 그들은 군부 독재와 맞서기 위한 이념으로서 좌익 서적들 특히 일본등지에서 밀반입된 맑스-레닌 서적의 우리말 번역에 심취한 것이 주종인 것으로 당시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군사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면에서 지금의 386세대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그들을 교육하며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보호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는 참으로 암담한 시기였습니다. 그들이 군사정권과 미국이 결탁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또 그것이 사실이었기에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이념으로 좌익서적에 탐닉한 것은 이해할 만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반미정서의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1980년대 세계 지성계의 흐름에서 볼 때 우리 젊은이들은 적어도 10년 내지 20년쯤 떨어져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사실 19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에 세계선진대학가를 휩쓸었던 학생들의 좌경 현상이 1980년에 이르러 한국대학가를 강타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하반기에는 불란서나 독일 등에서 60년대 70년대의 좌경학생운동리더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우경해 대학교수, 사업가, 언론인 등등으로 변신했던 것입니다. 물론 좌익 그대로 남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별로 많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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